진심못방
진심을 말하지 않으면 못 나오는 방에서 유키가 고백해야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고 나고 자라온 곳에 관한 그리움임… 지나가듯이 가족이 보고 싶다는 것을 말했다가 잠금쇠 하나 풀리길래 자기 깊은 곳에 있는 마음까지 말할 것 같음
제가 나고 자라온 곳은… 글쎄요. 딱히 특색이 있는 곳은 아니었어요. 평범한 대도시라고나 할까…… 바다를 끼고 있는 대도시치고는 관광이 유명한 곳도 아니고, 놀거리가 부족한 곳으로 유명했죠. 그런데 저는 좋았어요. 일본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 해도 좋은 곳인데 그곳의 여름마저 사랑할 정도로.
중학교가 근처에 세 군데였거든요. 아가씨들이나 다닌다는 사립 여학교,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남학교, 그리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학. 저는 여학교를 다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선배들도 무섭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품위를 지키라며 화내셨지만…… 다들 아가씨라기보다는 그맘때 어린애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곤 했었는데. 아. 맥도날드가 뭐냐면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취급하는 패스트푸드 가게인데, 일과를 마치면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소프트콘을 사 들고 집에 가곤 했어요. 뜨거운 햇빛 때문에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금방 녹아버려서 묻히지 않고 먹으려면 빠르게 먹어야 했거든요. 급하게 먹다 보면 입에 아이스크림이 묻는데, 친구들과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이 웃기다며 서로 놀리고 그랬는데. 정말로 즐거웠거든요…….
그게, 그 기억들이, 그 시간들이 너무너무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가는 과정이 아무리 위험해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즐겁지 않은 것도, 소중한 것이 생기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너무나도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다 그곳에 있으니까……
이 정도까지만 말해도 문 열릴 텐데, 딱히 공유하고 싶지 않은 아래를 공유하게 된 기분은 어떨까. 사실 별 생각 없을 것 같아서 웃기긴 함. 말 안 하려고 하는 것도 말하면 집에 더 가고 싶을까봐 그러는 거고, 이것보다 더 심연을 말하면 좀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어할 것 같긴 하다.
그 더 심연이라는 것은... 별 건 아니고 '당신을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와 관련된 건데, 유키의 캐릭터성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유키의 캐릭터 키워드를 하나만 꼽자면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 유키는 항상 집에 가고 싶어하고, 그래서 이곳에서 소중한 것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그냥 한여름 밤의 꿈 정도로 치부하고 싶어함. 눈 앞의 실체 있는 사람을 실체로서 대하고 싶지 않아함. 눈 뜨면 사라질 백일몽. 사랑스러운 환상.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그 정도로 생각하고 싶어한다고... 이것도 현실도피의 일종이긴 할 거라고 생각함. 그렇지만 이게 유키가 현실을 버티는 방법이야... 어쩔 수 없는 것임
근데 사실 거기까지 말하게 된다면 울 거 같긴 함. 근데 울고 나면 오히려 개운해할 것 같아서... 별 걱정은 안 된다. 오히려 이걸 들은 드림캐의 멘탈이 더 걱정... 사실 드림캐 멘탈도 걱정 안 됨... 고백하기 직전이라면........ 뭐 어쩌겠어요 니들이 알아서 해라 나는 팝콘씹을게
ㄴ그냥 팝콘이 드시고 싶으신 거죠?
진심못방에 넣고 싶은 이유라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극장판에서 사람들이 LCL로 녹아내려서 하나가 되는 장면을 아십니까? 모르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긴 할 듯... 암튼 신지와 아스카는 LCL로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둘로 분리되는데요...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나눠진 거니까 서로의 심연을 <<알게>> 될 수밖엔 없잖아요?
그러니까 에반게리온의 '하나가 되자'를 예시로 들어 '진심을 말하지 않으면 못 나오는 방' 상황에서 보고 싶은 것의 요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의 심연을 냅다까리 뒤집어서 보여주고 강제로 서로의 감정과 상황 행동원리를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물론 폭력적이죠 당연히 폭력적이고 상처가 될 수 있는 상황임
왜냐하면 타인의 심연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생각의 메카니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걸 보통 사람들은 <이해>라고 부르고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사랑과 존중으로 그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겁니다... 알게 된 이후에는 그에 대해 판단하지 않기 쉽지 않아서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쉬워지니까... 앎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라고도 느껴지죠... 따뜻한 마음으로 건넨 연민 이해 존중이 폭력으로 느껴지고 자신을 <<알고>> 있는 그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괴로워지는 것임
그치만 재밌지 않나요? 저는 재밌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극적인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유키 화이트라는 여자는... 그냥 <집 가고 싶음>. 즉 <상실한 것에 관한 그리움>이 숨기고 있는 코어인데다가 딱히 알려져도 상관이 없어서? 노잼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