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유키
점심 다 먹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는 날도 있겠지. 점심 먹고 체육관에서 교육동으로 향하던 애들의 발걸음이 바빠질 거고 리들도 그 중 하나였을 듯.
리들 우산 없어서 짜증났겠다. 학원 결계 내부 날씨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이유도 ㅈㄴ 모르겠을 거고. 옷 젖는 것도 싫고, 머리카락 흐트러지는 것도 싫음. 곧 그치겠거니 하며 체육관 처마 아래서 비 잦아들기를 기다리는데…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겠지.
근데 비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수업에 늦는 건 리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잖음? 그래서 비 맞든 말든 나가려는데 차분한 소프라노가 들려옴.
비 맞으실 텐데.
고물 기숙사의 유키가 한 손에 작은 우산을 든 채 서 있었음. 다감한 갈색 눈에는 걱정이 어려 있었고.
괜찮아. 이런 비쯤이야.
저 자그만 여자애가 내 안위를 신경쓰는 게 괜히 신경쓰이고 그게 짜증나긴 한데… 그래도 리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음. 유키는 리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림.
옷이 전부 젖을 텐데요. 그럼 감기에 걸릴 거예요. 제 우산이라도 쓰실래요? 저는 좀 젖어도 괜찮아서요.
유키가 내민 우산. 하얀 바탕에 핑크 하트 문양이 박힌 다소 유치한 디자인이었음. 안 그래도 귀엽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런 디자인 쓰는 건 싫었음. 그리고 디자인보다도 이 여자애의 단순한 호의가 좀 자존심 상하고 화나는 부분도 있었을 듯.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너는 여자애야. 비에 젖어서 곤란해지는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너라는 걸 모르는 거니?
그치만 선배가 젖어서 감기에라도 걸리면 슬플 거 같은걸요.
네가 젖어서 감기에 걸려도 슬퍼하는 사람은 있을 걸. 그 사람들 생각은 안 하는 거니?
그런 사람이 누가 있다구요?
…….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되게 냉소적인 말이네 이거. 리들은 한참 말을 못하다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을 듯.
…그런 말 하지 마.
에?
네 친구들이 슬퍼할 거야. 그림도 그렇고, 에이스와 듀스도 걱정하겠지.
……
그리고 나도, 조금은 신경쓰일지도…….
아니 어쩌면 당연한 말이잖음? 나한테 우산 줘버리고 본인은 비를 맞고 가겠다는데 당연하지ㅠ 근데 그 말을 들은 유키의 얼굴도 새빨개짐. 고장나서 어버버거리는 유키한테 리들이 말함.
…나 때문에 누가 젖어서 감기라도 걸린다면 신경쓰이는 게 당연하잖아. 네가 이런 말로 착각할 아이는 아니지만…….
-알고 있어요.
이상해진 분위기에 변명하는 리들에게 유키가 부드럽게 웃어보임.
선배는 다정하니까. 착각 안 할게요. 그럼 우리 우산 같이 쓰고 갈까요?
리들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임. 유키가 내민 우산을 받아서, 유키의 어깨가 젖지 않게 제 쪽으로 유키의 어깨를 끌어당긴 채로 걸어감. 어쩐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는 소년… 달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