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성의 정원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런 좋은 날에 집무실에만 박혀 있기는 역시 아깝단 말이지. 아무도 몰래 사니와의 집무실에서 도망쳐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하오리의 안주머니에서 젤리 한 봉지를 꺼내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에 퍼졌다. 일과시간에 도망치다니. 지난주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카센과 정한 빡빡한 규칙들을 모두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바로 저질러 버렸다.
정원 입구 쪽에서 고개를 휙휙 돌리는 카센이 보인다. 이렇게 금방 들킬 줄은 몰랐는데, 얼마 안 봤다고 카센의 얼굴이 반갑기 그지없다. 나는 손을 반짝 들고 붕붕 휘둘렀다.
“카센! 여기야! 여기!”
“……! 주인!”
카센이 평소 말하던 우아함은 어딘가로 팽개치고 내게로 달려온다. 나는 밝게 웃었다.
“주인 너! 미다레한테도 말 없이 사라져?!”
“헤헤, 한 번만 봐줘.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나갈 거면 적어도 미다레를 대동하거나 단말기를 들고 나갔어야지!”
“잉. 잘못했어요. 그치만 쉬고 싶었단 말이야.”
“하아…… 놀랐으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줘. 풍류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다들 놀라니까.”
카센도 놀란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나를 점잖게 타일렀다. 얼마나 놀라서 뛰어다녔는지는 몰라도 앞머리가 죄다 헝크러져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카센의 앞머리를 정리했다. 카센이 한숨 쉬며 신세 한탄을 했다.
“하아, 주인이 역수자 측에 납치된 줄 알고 정부 쪽으로 달려가려는 미다레를 겨우 말렸다고. 주인은 며칠 전 쓰러졌다 깨어난 애가 왜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지.”
“미다레가? 카센도 그렇지만 정말이지 미다레도 과보호야. 30분 정도 자리 비웠을 뿐인데. 이러다가는 미다레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겠어.”
“안 그래도 미다레에게 너를 혼자 두지 말라고 했어. 제 성에서도 길을 잃는 길치인데 혼자 두지 말라고.”
잠깐. 나는 눈을 부라렸다. 이거 어린애 취급도 아니고 완전 바보 취급 아니야? 나는 카센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다 말고 손을 내렸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이 성이 너무 큰 탓이라니까?! 카센은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그럼 내가 주인 말고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까. 성에서 길을 잃는 건 너밖에 없는데.”
카센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거 완전 주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구만! 아무리 카센이 몇백 년은 우습게 살아온 물상신이라지만 주인은 난데! 볼을 부풀렸다. 나도 억울한 부분이 있단 말이다. 현대의 아파트에서 살다 이런 거대한 성에서 살게 되었는데, 버벅대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나는 평범한 거라고. 그런 걸 모르지도 않을 거면서 맨날 나한테만 뭐라 하고. 내 칼이면서 나만 미워해. 훌쩍.
나름의 불만을 열심히 표출하고 있자니 정원 입구에서 미다레가 달려온다. 발걸음에 따라 긴 금발이 찰랑대는 것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미다레도 많이 뛰어다녔나 보네. 얌전하게 빗어준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다.
“주인!”
나를 발견하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꼭 비명 같다. 카센의 말대로 미다레가 많이 걱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안전하고 멀쩡하다는 의미로 카센에게 그랬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와 카센이 있는 곳까지 달려오는 미다레가 걱정되어 소리쳤다.
“미다레! 그렇게 뛰면 넘어져!”
“……넘어지면 주인이 받아줄 거잖아. 아니야?”
내 앞에 멈춰선 미다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녀석, 능청대는 건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야? 미다레는 아기라서 이런 나쁜 건 배우면 안 되는데. 미다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애초 이 성에는 아직 카센과 나, 미다레밖에 없으니 누구한테 배웠을지는 뻔하지만 그런 진실 같은 건 애써 무시했다.
“에잇, 그래도 조심해야지. 미다레가 다치면 속상할 거란 말이야.”
그러며 미다레의 볼을 쭉 늘렸다. 보드라운 볼이 쭉 늘어났다. 아, 햄스터같아.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쓰다듬자 미다레가 손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존재해도 돼?!
“주인. 미다레가 걱정하는 건 괜찮고, 네가 걱정하는 건 안 된다는 거니? 역지사지를 해보는 건 어때.”
“우우… 잘못했다니까아…….”
미다레를 귀여워하던 것을 멈추고 카센의 눈치를 봤다. 카센도 아주 화가 난 거 같진 않지만, 처음부터 혼내둬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봐줘. 오늘은 단도하는 날이잖아.”
“상당히 봐주고 있다만? 단도하는 날이 아니었다면, 집무실에 무릎 꿇려 놓고 손들게 했을 거야.”
“카센은 내가 앤 줄 알아?!”
“하는 행동을 보면 초등학생보다 더하지. 그 애들은 적어도 손을 들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는 한다더구나.”
“내가 잘못했어…….”
잘못한 게 있으니 주인이래도 큰소리를 치질 못한다. 에구, 내 팔자야.
카센이 마음을 놓았는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카센의 눈치를 보다가 질문했다.
“도검은, 다 만들어졌대?”
“만들어지기까지는 아직 두어 시간 정도 남은 모양이야. 네 준비 시간으로는 딱이지.”
“잠시 쉬었다가 준비하고 싶은데.”
“원하는 대로 해. 너무 늦은 밤만 아니면 되니까.”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카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30분만 더 쉬고 준비하자. 아무리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지만, 한 시간 반이면 준비한 후리소데를 입고 화장까지 하고도 남겠지.”
“너무 엉망이면 내가 옷매무시를 정리해 줄 테니 걱정마. 잘할 거야.”
카센의 격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완전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아무런 도움도 없이 첫 단도 의식을 하는 날. 날씨도 좋고,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했으니 이제는 실행하는 것뿐이다.
어떤 검이 만들어지고, 어떤 츠쿠모가미가 검에 깃들까. 그런 궁금증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 다음글pro 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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