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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자신으로서의 긍지를

너에게 자신으로서의 긍지를

 

 

 

 

 

 

 

있지, 카센.”


서류를 들춰보던 심신자 하루가 제 초기도에게 말을 걸었다. 업무가 지겨운 건지 카센을 부른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제 주인에게도 엄격한 카센 카네사다가 사니와를 쳐다보았다. 큰일로 부른 것이 아니라면 한 마디 해줄 생각이었다.


또 뭘까, 주인.”

야만바기리 말이야.”


평시와 같은 태연한 목소리였으나 그리 작은 문제는 아니었다. 카센은 제 주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를 현현시킨 모든 심신자가 공통적으로 겪는 그 문제겠지. 카센은 그리 생각했지만 주인이 말을 끝내기까지 기다렸다.


복제품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기 긍정감이 낮잖아.”

그래서?”

나는 그에게 자긍심을 채워주고 싶은데, 같은 시작의 한 자루로서의 의견을 묻고 싶어.”


카센 카네사다는 드물게 할 말을 잃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질문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냥 미숙하게만 보이는 주인이지만 이런 부분을 농담 따먹기용으로 사용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신자로서의 하루는 매사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카센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질문했다.


하루, 왜 그 부분을 채워주고 싶은 건지 물어봐도 되겠니?”

자기 평가가 낮으면 괴롭잖아.”


단순명쾌한 대답이었다. 가까스로 헛웃음을 참은 카센은 다시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반론적인 이야기구나.”

. 일반론을 더 주장해 보자면, 그건 본인에게 한정한 이야기가 아니야. 설령 본인은 괜찮다고 해도, 계속 그러고 있으면 동료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구.”


하루는 자신감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일반론은 대체로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센은 제 주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하루는 아직 심신자로서 미숙하다. 무른 성정에다 섬세한 감수성까지 가졌다. 그렇기에 내가 더 엄격하게 굴어야 하는 거겠지. 그리 생각한 카센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결국 너는 너를 위해 야만바기리를 바꾸려는 거구나.

?”

그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란다, 하루. 너는 주인이니까. 당연히 그에게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어. 그렇지만, 네가 야만바기리를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

그게 정말 야만바기리를 위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지 정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구나.”


카센은 제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하루는 반박하지 못하고 굳은 채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한숨을 내쉰 카센은 다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카센 씨… 주, 주인님이… 고민이… 있어 보이셔요.”


고코타이의 말에 카센 카네사다가 하루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하루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힘없이 수저를 움직이고 있었다. 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알고 있을 수밖에. 고민거리를 건넨 사람이 바로 카센이었다. 아까 전 대화를 나눈 이후 계속해서 저 모양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카센은 별일 아니란다. 내일 무슨 간식이 나올지라도 고민하고 있겠지.”라며 고코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나, 카센으로서도 걱정되긴 매한가지였다. 그의 주인은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단순한 구석이 있기에, 하루가 이렇게까지 고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 주인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쌩쌩했단 말이야! 일 너무 많이 시킨 거 아니야, 카센 씨?”


미다레가 도끼눈을 떴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어본다며 하루의 곁으로 다녀온 미다레도 별 소득은 없는 모양이었다.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던 야만바기리가 하루를 흘긋 보며 한마디 했다.


혼마루의 운영에 관한 고민인가. 복제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하하, 그건 진품이어도 모르지 않을까.”


야마토노카미의 농담에 야만바기리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속을 날로 파헤칠 수는 있어도 그런 방식으로 마음속까지 알 수는 없는 탓이다. 무슨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지 하루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던 도검들로서는 영영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아키타가 카센에게 질문했다.


카센 씨. 뭔가 짚이는 거 없나요? 점심 시간에 만난 주군은 기운이 넘쳐 보였는데요.”

글쎄다…….”


카센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가끔은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도 풍류이지 않겠니.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소중하다만, 주인에게 잠시 시간을 주자꾸나.”


카센의 말을 모두가 납득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빠른 야마토노카미만이 주인이 심란한 이유와 카센이 관련있는 것이 아닌지 짐작할 뿐이었다.

 



 

🗡

 

 



시야 한 편에서 희끗한 것이 움직였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 혼마루의 정원을 걷던 하루가 놀라 소리쳤다.


거기, 누구야?”

나다.”

, 야만바기리구나.”


귀신인 줄 알았어. 속삭이듯 말하며 하루가 힘없이 웃었다. 하긴, 신들이 머무는 혼마루에 잡귀들이 나타날 리 없다. 그러나 야만바기리는 다른 것을 걱정하는 듯 질문했다. 언제나와 같은 우직한 목소리였다.


미다레 토시로는 어디에 두고 혼자 다니나.”

미다레도 쉬는 시간이 있어야지. ……야만바기리. 잠깐 걸을래?”

복제품이라도 괜찮다면, 함께하지.”


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였더라면 복제품이라고 해서 너를 싫어할 리 없잖아. 내 칼인걸.’과 같은 말이 뒤따랐을 테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 말이 없었다. 잘 꾸며진 겨울의 정원을 감상하며 하루는 다만 걸었다. 야만바기리도 정적을 메우기 위해 입을 열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라면 있었으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말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돌바닥을 신발이 딛는 소리만 총총히 울렸다.


충분히 걸은 하루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하늘을 쳐다보다, 곁의 야만바기리에게 시선을 두었다. 시선을 느낀 야만바기리가 낡은 천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하루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있지, 야만바기리.”

쳐다보지 마라, 주인.”

질문이 있어.”


야만바기리는 제 주인이 반나절 동안 고민하던 주제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곧 이는 자신이 영도 야만바기리의 복제품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떠올렸기에, 그를 입 밖에 내지 않고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기회를 얻은 것은 단지 야만바기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며, 그런 일들은 가끔 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야만바기리는 알았다. 자신이 단지 운이 없어서 복제품으로 태어난 것처럼.


있지, 야만바기리는 복제품인 것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잖아.”

……그렇지.”


야만바기리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말을 뱉었다.


당신도, 그것이 신경 쓰이나?”

중요하지 않아. 야만바기리는 내 칼인걸.”

그렇다면 왜 질문하는 거지?”


질문에 날이 서 있다는 사실을 야만바기리는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루는 잠깐 눈을 크게 뜨고 야만바기리를 보더니,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잠시 열었다가 닫았다. 야만바기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대충 알겠어.”

……무엇을?”


겨우 비져나온 야만바기리의 목소리는 누군가 목을 조른 것처럼 새된 소리였다. 그의 두려움을 확인한 하루는 야만바기리를 올려보았다.


있지, 야만바기리.”

…….”

나는 네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지?”


카센이 무엇을 걱정했는지 하루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야만바기리는 하루의 요구가 있다면 변화할 수 있었다. 그는 물건이고, 하루는 그의 주인이니까. 그러나 그리함으로써 변화한 야만바기리의 모습은 하루가 원한 모습이 아닐 테다. 심신자 하루는 자신의 도검들을 인간으로 대하길 원했고, 물건이 아닌 인간의 변화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야만바기리의 변화를 원한다면 하루는 요구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도, 이 말만은 들어줘.”

오늘의 주인은, 영문 모를 말만 하는군……. 그래, 뭐지?”

존재에 있어 원본인지 복제품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 말은 그날 야만바기리가 들은 말 중 가장 뜬금없고, 가장 영문 모를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야만바기리는 대답하지 못하고 깊어진 눈으로 하루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네가 복제품이라도 네가 걸어온 시간은 가짜가 아니고.”


하루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자신만만한 웃음이 야만바기리에게는 그토록 아득했다. 힘없던 목소리에는 어느새 자신감과 힘이 실려 있었다.


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 있도록 할 거야.”

……정말, 모를 말만 하는군.”


야만바기리는 겨우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올곧은 시선을 마주하기 힘들어 천을 끌어당겨 눈을 가렸다.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몰라도 돼. 자연스럽게 알게 해줄게.”


머리를 감싼 천 위로 작은 손이 덮였다.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 그리 부드럽고 약한 것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의 보물.”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민망한 호칭에도 핀잔 한번 주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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