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류하루] 삼천 세계의 까마귀를 모두 죽여도
사니와 하루는 당일의 업무를 끝낸 이후 본성의 정원을 걷고 있었다. 호위도이자 근시인 미다레가 사니와의 두 발자국 뒤에서 그를 따랐다. 보통 하루는 업무가 일찍 끝난 날에도 익일의 업무를 보거나 본성에 있는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러 가기 때문에, 이러한 휴식 시간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저기, 주인님.”
“응? 왜 그래, 미다레?”
“있지, 주인님. 무슨 일 있어?”
미다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루를 올려다보았다. 오늘의 하루는 조금 이상했다. 다른 남사들이야 몰라도 미다레는 알 수 있었다. 근시로서 매일 같이 하루를 따라다니는데, 모를 리가. 미다레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하루의 얼굴을 살폈다. 언제나 살풋 미소짓고 있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그 자식 때문에 그래?”
“그 자식이라니, 미다레. 예쁜 말.”
“오늘 하루종일 약간 멍했잖아. 코류 씨 때문에 그러는 거야?”
하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제 성에서 가장 가까운 도검이자 호위도인 미다레에게라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있었다. 미다레는 입을 다문 하루를 보고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있지, 주인님. 그 날 코류 씨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말해줬잖니. 그냥 다치지 말라고, 그런 말이나 했다고.”
“거짓말. 울었잖아.”
“……미다레.”
“나는 주인님의 생각을 모르겠어.”
미다레가 한숨 쉬며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앉은 채로 표정을 살짝 굳힌 채 서 있는 하루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달빛 받아 하얗게 빛나는 얼굴이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얼굴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미다레는 입술을 삐죽였다.
‘나나 다른 도검남사들은 아무리 애써도 채워줄 수 없는 자리겠지. 분명.’
미다레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다레도 알고 있었다. 하루에게는 모든 도검남사들이 다르고, 그들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라졌을 때의 구멍은 다른 남사들로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을. 미다레가 사라져도 그럴 것이고, 카센이 사라져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미다레…….”
“그렇잖아. 주인님은 나한테도 속을 안 보여주니까. 어린아이처럼 보여도 나는 주인님의 호위도인걸.”
“미안해, 미다레.”
“그래도 말은 안 해 줄 거잖아.”
“…….”
하루가 한숨을 푹 쉬었다. 미다레를 가만 내려보던 하루는 결국 미다레의 옆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불퉁한 표정을 짓는 미다레를 옆에서 쳐다보다, 미다레의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하루가 말했다.
“있지, 미다레.”
“왜. 주인님.”
“나는 말야, 코류를 좋아해.”
“다른 남사들이나, 나와는 다르게?”
“미다레는 똑똑하구나. 응.”
하루는 둥근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 사람도 같은 보름달을 보고 있을까.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루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다레, 알겠지만 코류는 주인을 찾는 검이야.”
“그리고 수행은 주인에게 자신을 맞추러 가는 거지.”
“미카 할아버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다레는 미카즈키의 기척을 미리 알아채고 있었던 모양인지 덤덤했다. 놀란 사람은 하루 혼자로, 하루는 놀라 굳은 팔을 살살 문질렀다.
“기척 좀 내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충분히 기척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정인의 생각에 이 할애비의 기척을 놓친 것은 아니고?”
장난스러운 말에 하루가 한숨을 쉬었다. 가슴 속 수심이 깊었다. 미카즈키가 잔디를 밟고 벤치 뒤에서 앞으로 건너왔다. 하루는 미카즈키를 흘겨보며 하던 말을 마저 했다.
“그는 주인을 찾는 검. 그러니까 이 곳에서도 완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했을 거야. 주군이라고 말은 하지만,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주인님…….”
“그래서… 나는 그가, 언젠가는 훌쩍 떠나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 당초 이 곳에 적이란 것이 없었던 사람처럼.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말이야.”
쓸쓸한 목소리였다. 말을 잃은 미다레를 대신해 하루는 미카즈키에게로 말을 걸었다.
“미카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글쎄다. 그 녀석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말이지. 자유로운 혼이라고는 생각했다만.”
“어딘가 한 군데에 매이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 없으셨어요?”
“하하, 하루야. 귀여운 사람의 아이야. 너는 코류 카게미츠를 그리 보고 있었던 게냐?”
“할아버지는, 어떻게 보시기에요?”
미카즈키는 단번에 말하지 않고, 잠시 하늘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글쎄다. 나는 말이다…….”
미카즈키는 말을 그곳에서 멈추었다. 힌트를 더 주고 싶었지만, 이 이상 힌트를 주는 것은 코류에게도, 하루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카즈키는 그저 빙긋 웃었다.
“녀석이 돌아오면, 그의 행동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어떻느냐?”
“글쎄요… 돌아오기는 할까요? 저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돌아올 것이다, 그는 주인을 찾는 검이라 하지 않았니.”
“그런가요…….”
마지막은 꼭 한숨처럼 들렸다. 미다레가 슬퍼하지 말라며 하루를 꼭 끌어안았다. 미다레의 머리카락을 쓸며, 하루는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밝았고, 내일은 코류가 돌아오는 날. 삼천 세계의 까마귀를 모두 죽여도 아침은 오고 마나니, 우리는 내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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