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류하루] 내가 라노베 수라장의 여주인공일 리 없어!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화장을 했다. 오늘 입을 옷은 연초록색 호몬기. 할머니의 유품 중 하나였다. 사니와로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신 할머니는 하루의 앞으로 생전 소장하던 기모노를 대부분 남겼다. 신을 모시는 몸이라면 이런 옷들도 몇 벌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함께였다.
별채에서 나서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근시 미다레가 작게 꺅! 하고 탄성을 질렀다.
“꺄! 오늘 무척 예뻐! 주인님. 웬일이야?”
“오늘 정부에 들르는 날이잖아. 격식을 갖춰야지.”
“고작 시간 정부에 가는 거면서 이렇게 예쁘게 입을 필요 있어? 아! 알았다. 시간 정부에 좋아하는 사람 있지!”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주인을 놀리면 못 써, 미다레.”
나는 장난스럽게 말하는 미다레의 양 볼을 늘렸다. 말랑말랑해. 볼을 늘리는 대로 쭉쭉 늘어난다. 한참 동안 볼을 쪼물딱거리며 만지고 있다니 미다레가 장난스럽게 손목을 잡아왔다.
“그—만! 더 이상은 주인님이라도 화낼거야?”
“알겠어. 시간 정부에 다녀와서는 만물상에 가자. 찹쌀떡을 사 줄게.”
“치이, 주인님은 내가 찹쌀떡 하나에 넘어가는 어린애로 보여?”
“알았다, 미다레는 찹쌀 인절미라서, 친구를 먹는 건 싫은 거지? 흐음. 그럼 어쩐다. 이치고씨 몰래 타이야끼 사줄까?”
“우, 주인님!”
놀리자 미다레가 볼을 부풀린다. 아, 귀여워.
미다레와 옥신각신하며 걸어가다 보니 본성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의아했다. 나를 맞이하러 나오는 사람은 보통 근시인 미다레 하나뿐이니까. 긴 금빛 머리카락을 묶어 멋을 낸 것을 보니 며칠 전 수행을 다녀온 코류가 분명했다. 괜히 심장이 뛰는 것을 내리누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코류, 마중 나온 거예요?”
“아, 으응. 마중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수행을 다녀온 이후 코류는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다녔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와이셔츠 단추를 모두 잠근,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것보다, 오늘 예쁘네, 주인.”
“……고마워요. 그런데… 정말 무슨 일 있나요?”
“아, 오늘 시간 정부에 가기로 했지?”
“네, 분명 예정은 그런데…….”
“괜찮다면, 나를 데려가 주지 않겠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간 정부의 부름을 받아 혼마루에서 나갈 때 함께하는 것은 보통 근시나 호신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근시는 미다레로 고정이고. 내가 뭐라 하기 전에 미다레가 눈을 뾰족하게 뜨고 쏘아 붙였다.
“왜?”
“어차피 미다레는 하루와 자주 외출하잖아? 한 번쯤은 양보해 주는 건 어때?”
“싫—어. 주인님이 돌아올 때 만물상에서 타이야끼 사 준다고 했거든?”
“타이야끼는 돌아오며 내가 사다 줄게.”
“코류 씨야말로 만물상에 볼일이 있다면 내가 대신 해주면 되는 거 아냐?”
“저, 둘이 싸우지 말고…….”
둘의 으르렁거림이 장난이 아니라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코류 씨,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주인과 데이트하고 싶어서, 라고 하면 거절할 거니?”
“그…….”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당황하여 입을 못 다물고 있는 사이 미다레가 외쳤다.
“코류 씨, 비겁해!”
“비겁하기는. 이제까지 주인을 독점해왔으니, 가끔은 양보하는 게 어때?”
이게 무슨 상황이지? 라이트 노벨에서나 자주 나오는 상황을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황스러워져 굳어 있자, 소란을 듣고 카센이 걸어나왔다. 나는 카센에게 뛰어가 그의 팔을 붙들어맸다.
“응! 나는 오늘 카센이랑 갈 테니까, 카센 씨? 오늘 내 일일 근시야. 정부 업무에 따라와.”
카센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챈 듯 빙그레 웃었다. 역시 초기도, 역시 카센! 두 사람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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