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4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span class="sv_member">린더</span>
린더 @frauroteschuhe
2026-02-04 11:48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나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싫지 않다. 아마도 이 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이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할 테니까.


살아가는 데에 큰 불만은 없다. 작은 불만이 여럿 있을진 모르지만 크고 끔찍한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싫지 않다. 이것은 스스로가 스스로로 존재하는 것이 싫었던 많은 날들에 걸쳐 알아낸 사실이다. 나는 내가 싫거나 밉지 않고, 가끔 그렇더라도 나로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가끔은 잘못된 선택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내가 그 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에 대해서.


실재하지 않는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익하다. 그러나 만약 했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사라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더라도 지금쯤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 테다. 내 불만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점이니까. 


그러나 이 말은 이상하다. 나는 앞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싫지 않다고 했으니까. 실로 그렇다. 나는 대체로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에 불만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에 그리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그런 날이 온다. 참을 수 없는 날이 온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무언가를 씹고 먹고 소화하고 노폐물을 배설하며 추위에 떨고 더위에 시달리는 이 모든 일들이 다만 지치고 질리는 날이 온다. 내가 먹는 일곱 종류의 약과 죽음과도 같이 깊은 잠으로도 오지 않게 할 수 없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날. 더 나은 나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나로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기 위한 여러 시도에도 모두 실패한 나를 그저 인정할 수도 없는 날. 트위터에 몇 마디를 쓰고 끔찍한 생각을 하며 나를 달래봐도 답이 나오지 않아 나는 자는 것을 선택했다. 전원을 끄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왜 견딜 수 없었는지 바라볼 수 있다.


어제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 것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는 배가 고팠다. 자기 전에 비해 무언가를 씹고 삼키는 데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았기에 조금 이르게 저녁을 먹었다.


자꾸 자신을 죽이려는 스스로에게서 살아남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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