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레오유키] 소문의 그녀

<span class="sv_member">린더</span>
린더 @frauroteschuhe
2026-02-10 02:56

“어이, 뭐 하는 거냐. 초식동물.”

“딱히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왜 내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냐는 뜻이다.”

“안 되나요?”


유키가 순진무구한 눈으로 레오나를 올려다보았다. 레오나는 유키의 생각을 꿰뚫어보았다. 또 ‘난 아무것도 몰라요.’ 전법인가. 생각보다 영악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천진난만한 소녀로만 보이는 제 외양을 이렇게 사용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될 거라고 생각하나? 얼른 내려와.”

“피이.”


유키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소파로 쪼르르 달려가 앉는 걸 보면 참 겁도 없다 싶었다. 레오나는 유키를 쳐다보며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주인 없는 방에 찾아와 침대에서 뒹굴기나 하고. 너, 네 평판이나 소문에는 관심 없나 보지?”

“그런 것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해요?”


유키가 불퉁하게 대답했다. 사실은 유키도 학교 내에서 도는 제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유키 화이트는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고스트라더라.’부터 시작해서 ‘유키 화이트와 레오나 킹스칼라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까지. 저를 둘러싼 소문들을 모르는 게 아닌데도 유키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차피 그런 소문들, 제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만 해도 생겼다가 사라지는 걸요.”

“틀린 말은 아니다만,”


레오나도 수긍했다. 남학교의 홍일점이라는 특성상, 유키 화이트는 온갖 추문에 말려들었다가 벗어나기를 반복했다. 소문만 들으면 유키는 남자에 미친 여자이기도 했고 연애 감정에는 전혀 관심 없는 어린아이이기도 했다. 그래서 입을 다무는 것이다. 초반에는 자신이 얽힌 소문들에 대해 해명하려 했지만, 해명하려 하면 할수록 더 질 나쁜 소문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는걸요.”

“세상 다 산 할멈처럼 말하는군.”

“신경 안 쓰면 소문 따위는 사그라진다는 말씀. 그럼 오늘도 신세 좀 지겠습니다아—.”


유키는 그러며 소파에 발라당 누웠다. 읽고 있던 공간 마법서의 다음 페이지를 만화책마냥 팔랑거리며 펼쳤다. 어이가 없어진 레오나가 유키에게 질문했다.


“이 초식동물이…… 네 털뭉치와 싸웠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지?”

“어떻게 아셨어요?”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림과의 투닥거림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좀 심하게 싸웠다. 유키도, 그림도 서로와 마주칠까봐 기숙사에 늦게 들어갈 정도로.


“교실에 엎드려 있으면 별별 말들이 다 귀에 들어오지. 털뭉치 입단속 좀 시키지 그랬냐.”

“아, 몰라요! 그림은 정말 못된…… 나쁜 고양이예요.”

“고양이랑 진심으로 싸우는 너도 성숙한 인간 같지는 않은데.”

“저는 애니까 괜찮아요.”

“허. 그래? 보호자는 어디 갔냐. 데려가라고 해야겠군.”

“학원장이요? 벌써 퇴근했을걸요. 매일 여섯 시 이후에는 연락도 안 돼요.”

“정말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인간이군.”


진절머리 난다는 투가 웃긴 나머지 유키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미스터 크로울리가 조금 그런 면이 있죠. 읽던 책으로 입술을 가리고 깔깔 웃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레오나가 갑자기 생각난 안건에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어이, 초식동물.”

“네에~.”

“너, 여기 자주 안 오는 게 좋겠다. 앞으로는 에펠 녀석에게 신세 지든지 해라.”

“왜요?”


유키가 순진무구한 눈을 뜨고 물었다. 레오나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귀찮은 게 아니라, 진짜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레오나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와는 달리 나는 평판이나 소문이라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해서 말이야.”

“제가 레오나 씨랑 있는다고 해서 레오나 씨 평판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나요?”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서 유키와 매지컬 시프트 부원들이 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펠을 따라 매지컬 시프트 부의 연습에 자주 가기도 하고, 레오나에게는 기숙사를 빼앗겼을 때 며칠 신세도 졌다. 학교 안에서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래.

학교 안에서라면.


“키파지 그 영감쟁이가 묻더군. 너를 왕자비로 만들고 싶냐고.”

“에?”


너무 놀라 영감쟁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어디 소아성애자로 보이냔 말이다. 미친 늙은이. 그 늙은이가 뭐라고 한 건지 아나?”

“뭐라고 했는데요?”

“학교에서 너와 자주 노는 게 ‘신경쓰인다’고 하더군.”

“신경이…… 쓰여요?”

“그래.”


신경이 쓰여서 어쩌라는 거지. 유키가 정치적 화법을 이해하지 못해 알쏭달쏭해하기만 하자, 레오나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제 2왕자비 물망에 너도 올랐다는 얘기다. 정말 정신나간 늙은이 아닌가? 사람을 무슨 페도필리아로 몰아가고 있어.”

“저, 그렇게 어리지는 않은데요. 일단은 열여섯살이고.”

“아. 소문에 신경쓰지 않는 유키 화이트 양이 왕자비를 꿈꾸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레오나의 빈정거림에 유키가 도끼눈을 떴다.


“아니거든요?”

“그래?”


레오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유키가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2왕자비 하면 집에 못 가잖아요.”

“하…….”


아직도 집 타령인가. 레오나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마침 유키가 읽고 있던 마법서의 제목도 눈에 들어왔다. [공간 전이와 다중 우주에 관하여].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준다는 크로울리가 믿음직하지 못하니 제가 직접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력도 없는 초식동물이. 레오나가 쯧, 하고 혀를 한번 찼다.


“그 꿈, 아직도 못 버린 모양이군.”

“레오나 씨라면 버릴 수 있으세요?”

“내가 가진 걸 왜 버리지?”

“저도 그렇거든요.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나고야의 여름도 다 거기 있으니까요.”

“그래?”

“네.”


유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맑고 단단한 목소리에 레오나는 어쩐지 속이 비틀리는 것을 느꼈다. 레오나가 입꼬리를 다시 비틀어 올렸다.


“그럼 나가.”

“엑?! 왜요!”

“내 마음이다. 초식동물.”

“치사해!”


유키가 소파에 앉은 채 발을 통통 굴러댔다. 레오나가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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