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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레.”
“응, 주인.”
“잠깐 수리실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을까?”
미다레가 눈을 깜박인다. 이제까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미다레를 귀여워하기도 하고, 나는 굳이 근시이자 호위도를 떼어놓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니까. 미다레는 내 얼굴을 가만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수리실 문을 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나 옷매무시를 살폈어야 했는데,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수리실로 와 버렸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야 하다니. 카센이 우아하지 못하다고 한 소리 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주인?”
“코류.”
코류가 넝마짝이 된 몸으로 몸을 일으키려 한다. 나는 일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젓는다. 코류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몸을 일으키려 한다. 화가 났다. 너무나도 화가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코류가 누워 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치료를 위해 만든 식신들이 몸을 일으키려는 환자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참한 꼴에 눈물을 보이는 대신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누워 있으세요.”
“불충이야.”
“제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 더한 불충이에요. 그대로 누워 있어요.”
“주인의 말이 그렇다면.”
코류가 일어나려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누웠다. 나는 의자를 끌어와 코류의 침대 옆에 앉았다. 코류의 얼굴을 내려다보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으로 달려오며 무엇이든 말할 것을 생각해야 했었는데. 살아와서 다행이다? 부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가 살아온 것은 다행이나 지금은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지글지글 끓었다. 이를 악물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는 코류를 노려보았다. 코류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코류.”
“응. 주인.”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코류가 중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가 새하얘졌었다. 평소처럼 게이트까지 나가 마중했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급하게 달려온 콘노스케에게 ‘하루 님, 출진했던 부대가 돌아왔습니다. 부상자는 1명, 코류 카게미츠 님…….’ 따위의 말을 듣지 않았을 텐데. 그 말까지만 듣고 뛰쳐나온 탓에 나는 콘노스케에게 출진의 결과조차 듣지 못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기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신을 출진시키지 말아야 했어.
내 곁에 있으라고 해야 했어.
말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자 코류가 어색하게 말했다.
“있지, 주인.”
“말하지 마세요.”
“……돌아가 줄 수 있을까.”
“분명 말씀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루아메 성의 주인으로서, 도검남사의 주인으로서 모든 도검남사들에게 공평하게 굴어야 하는데. 도저히 다른 도검들에게는 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지 않았다.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마음이 찢어질 리 없었다.
코류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줄줄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서러움이 더해졌다. 미다레를 수리실 바깥에 두어서 다행이었다. 울어버리면 미다레도 어쩔 줄 모를 테니까. 푸른색 이로무지의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코류는 어쩔 줄 모르고 내게 손을 뻗다 신음을 흘린다. 바보, 바보 같은 사람.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하루아메 성의 다이묘로서도, 당신의 주인인 사니와 하루로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원한다면, 이 이후의 말은 모두 잊어주세요.”
“하루, 지금 무슨 말을…….”
나는 당황하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커다랗고 굳은살 박인 손을 두 손으로 쥐고 속삭였다.
“다치지 마세요.”
입이 열리자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부러지면 안 돼요. 사라지지 마세요.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죽으면 안 돼…….”
“……하루.”
코류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만큼 염치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스러질 수 있다는 생각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부러져버린 칼, 꺾인 도신, 피를 흘려가며 죽어가는 코류의 심상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바깥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세찬 소나기일 것이다. 지금 내가 그리 슬프고, 혼마루의 공간은 사니와의 심상세계를 반영하는 법이니.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 그렇지만, 그렇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당신이 부러지거나, 전장의 흔한 시체로 스러질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그게, 정말로, 참을 수 없어요.”
“…….”
“다른 도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도저히 그들과 당신이 같지 않아. 나는, 그러니까…….”
흐느낌이 차올라 제대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는 답이 없는 코류를 앞에 두고 울었다.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에게 함부로 마음을 쏘아대는 한심한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는……
최악의 주인이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하루.”
“그래서 당신의 상처를 견딜 수 없어. 당신이 부러지는 것도, 스러지는 것도 싫어요. 당신이 다친다고 생각하면 돌아버릴 것 같아. 어떠한 명분을 들어서라도 당신이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하루. 진정해.”
“그렇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당신은 쓰임 받아야 하니까. 당신이 자신을 쓸모없다고 느끼게 만들기는 싫어서…….”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예쁘지 않은 모습 따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앞에서는 항상 활짝 피어난 봄꽃처럼 있고 싶었다. 웃음만 보이고 싶었다. 추한 마음 따위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숨기고 산뜻하게만 대하고 싶었다. 다른 도검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단순히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코류도 곤란할 테지. 필시 곤란할 테다. 곤란하지 않을 리 없다. 모셔야 할 다이묘이며 주인이라는 여자가 제가 좋다며 고백을 해 오질 않나, 검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비치질 않나.
아. 역시 최악이다.
코류는 내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슬쩍 미소 지었다. 여전히 코류의 얼굴을 볼 용기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는 코류의 손을 놓았다. 이 이상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미안해요.”
결국 코류의 얼굴은 마주하지 않은 채, 나는 수리실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미다레가 눈물범벅인 얼굴을 보고 코류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날뛰었다. 그런 미다레를 꼭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괜찮아, 괜찮고 말고 중얼거리며. 사실은 자기최면에 가까웠지만.
코류가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편지를 쓰고 사라져 버린 것은, 수리가 막 끝났을 다음 날 아침의 일이다. 주인에게 얼굴도 비치지 않고 사라지다니. 이런 불충이 있냐며 하세베가 화냈지만, 나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다고.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그렇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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