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스더] ENCOUNTER
완결 스포일러
서에스더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더래도 그처럼 재수 없게 생긴 사람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을 제치고 남자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강창호?”
“이런, 들켰군.”
이리 얼굴을 대놓고 보이고 다니면서 들킬 리 없다고 생각했던 건가, 이 남자는? 단전에서부터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 그가 쌍성계의 지배자와 싸우다 죽기 전이었으니 더더욱…….
…….
그래. 강창호를 만나 판단력을 잃어버렸던 서에스더는 겨우 모두에게 당연해진 사실을 떠올려냈다.
강창호는 죽었다.
그렇다면 서에스더의 눈앞에서, 감히 자신이 강창호임을 부인하지 않은 이 자는 누구란 말인가?
“서에스더 대표, 혼란스러운 건 알겠지만 말이야. 이쪽도 사정이 있거든.”
“……기려 씨는요?”
평소의 판단력이 돌아온 서에스더가 질문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였다. 강창호는 그 말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기려 씨도 살아있는 게 맞죠?’
아마도 서에스더는 그렇게 질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강창호는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줄지 잠시 고민하다, 결국 평소의 의뭉스러운 태도를 고수하기로 했다. 애초 서에스더가 찾는 김기려는 이제 없으니까.
“흠, 이런 길바닥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강 헌터가 그런 것을 따지던 분이었던가요?”
“그냥 강창호라고 불러. 이런 몸으로 헌터 생활을 다시 할 수도 없으니.”
강창호가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태평한 태도였다. 강창호가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은 서에스더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강창호가 한 차례 대단한 희생을 하고 난 이후인지라 모두 잊었지만, 강창호는 본래 이런 사람이었다. 저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서에스더로서는 짐작하기도 힘들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건 서에스더는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서에스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강창호는 서에스더의 뒤에 있는 카페를 턱짓해 보였다.
“마침 커피를 사러 가던 길이었으니 카페에 잠시 앉아서 이야기하지.”
강창호가 미소 지었다. 서에스더는 어느새 말아 쥔 주먹에 힘을 뺐다. 그 느긋함에 맥이 빠지기도 했으나, 강창호와 지금 싸워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강창호를 노려보던 눈에 의식적으로 힘을 빼고, 서에스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오스크에서 제 몫의 커피와 샷 뺀 바닐라 라떼를 주문한 강창호는 창가 자리에 편히 앉았다. 서에스더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저 밉살맞은 얼굴만 봐도 열이 뻗치는데, 그와 대화할 생각을 하니 속이 타오른 탓이다. 서에스더가 음료를 주문하고 돌아오자, 강창호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싫어했었지, 김기려는.”
“특이한 취향이긴 했죠.”
“그 녀석에게 좋은 추억은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야.”
“커피에 나쁜 추억이 생길 까닭이 있나요?”
“뭐, 제각기 사정이 있으니까 말이야.”
강창호는 자신은 모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서에스더는 잠시 강창호를 노려보다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모습이 어쩐지 김기려를 떠오르게 한 탓이다. 김기려 또한, 제 지인들에게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그래요? 그럼 죽은 척하고 3년씩이나 잠수 타신 데에는 대체 어떤 사정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되나요?”
“그건…… 말해주기 힘들 것 같군.”
“순순히 입을 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협상의 조건을 생각하던 서에스더에게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리박혔다.
“김기려는 죽었어.”
서에스더가 눈을 깜박였다.
“솔직히 강창호 씨보다는 기려 씨가 살아있는 쪽이 믿음이 가는데 말이죠.”
“믿기 어렵겠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김기려는 죽었다.”
“……그래요. 그럼 그 사실을 굳이 카페까지 와서 하신 이유는?”
“어디까지 말해줘도 되는지 고민스러웠거든.”
서에스더는 입을 다물었다. 김기려의 죽음에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강창호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고려하면, 김기려라는 헌터가 살아있을 확률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서에스더는 강창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서에스더가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웬일로 솔직하시네요.”
“그래? 다들 나를 무슨 사기꾼이나 협잡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사실 나는 항상 솔직했거든.”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했지만, 당신이 무슨 이득이 있어서 나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렇지. 나는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있거든.”
“어머. 결혼이라도 하셨나요?”
서에스더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빈정거림이었다. 강창호가 드물게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결혼이라면 차라리 낫지.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으니까.”
“당신 같은 사람도 사랑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누구였나요? 그 불쌍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은 내 쪽이야. 고백도 안 했는데 차였거든.”
“저런.”
전혀 불쌍하지 않았지만, 서에스더는 예의상 한 마디 했다. 영혼 챙기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강창호는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러니 빨리 보내주겠어? 내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사람이 잡으러 올지도 모르거든.”
“허, 그 사람을 꽤나 무서워하는 모양이네요. 이전엔 S급 헌터였던 사람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무서운 사람이지.”
“첫 번째는?”
“당신이고.”
“그런 말 하지 않아도 강창호 씨에게 저주를 내릴 일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예, 예. 그러시겠지. 커피가 나왔으니 이만 가도 될까.”
강창호는 애초에 테이크아웃으로 음료를 주문했다. 샷 뺀 바닐라 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은 종이 캐리어를 받은 강창호는 카페를 나가며 서에스더에게 까딱 목인사를 했다.
서에스더는 그를 따라잡지 않았다.
강창호가 카페를 나간 순간 눈이 길게 찢어진 남성이 소부터 키워오는 줄 알았다며 잔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그가 끌고 있던 유모차에는,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다. 저 찢어진 눈매, 성격 더러운 인상, 보호자들의 눈치를 보는 순한 성격…….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러나 서에스더는 곧 아이에 대해 잊어버리기로 했다. 강창호와 의문의 아기에게 관심을 가지기엔 그에게는 오늘도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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