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신사와 히카게마치의 미망 #1부 버려진 신사
#1부
버려진 신사
실로 오랜만의 휴일이었다. 휴가를 받았음에도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난 하나부사는 습관적으로 연무장으로 발을 옮겼다. 다만 늘 입고 다니던 정복이 아닌 나가기에 하카마 차림이었다. 단정한 옷이긴 하나 나름 ‘휴가 중’임을 티내기 위해서였다. 상관이 쉬지 않으면 부하들도 쉬지 못하는 법. 물론 카타나슈 1번대에는 하나부사가 휴일에 쉬든 말든 신경 쓰는 사람 따위는 없었지만, 어쨌건 그들은 나흘 간의 포상 휴가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문지기나 히카게마치의 치안 유지관 역할이나 하던 카타나슈 대원들이 중앙의 감사를 받은 것은, 한 달 전 밝혀진 2번대 대장 카사네의 배신 때문이었다. 지시 불이행과 하극상에 배신까지. 의심 많은 자라면 군사 쿠데타의 전조로도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관련 공문과 서류 처리를 도맡아 하던 자가 하필이면 카사네였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는 구속 당일 자신을 따르던 대원 마도카와 함께 중앙으로 압송되었으니. 서류 업무를 주로 맡는 2번대에 남은 대원은 카타나슈에 배속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모미지뿐으로, 하나부사로서는 도저히 모미지에게 그 모든 일들을 떠맡길 수 없었다. 70여년어치 서류 검토에 몰아치는 격무, 그리고 중앙에서 나온 감사관들의 접대에 휴일마저 반납하고 일해야 했던 기간이 거의 한 달이었다. 어떻게 해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감사는 잡음 없이 끝났고, 카사네와 마도카도 다시 히카게마치로 복귀했다.
그렇게 모든 업무가 정상화된 지 일주일이 지나서, 중앙에서 카타나슈 1번대 전원에게 포상 휴가를 준다는 연락이 왔다. 포상 휴가가 겨우 나흘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우타는 불같이 화를 냈고 아오이 또한 헛웃음을 지었지만, 하나부사는 어찌되었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는 없지 않은가.
평소와 같은 시각에 연무장 근처에 도달하자 이른 새벽인데도 진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고 있었다. 모퉁이를 돈 하나부사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오이가 카타나슈의 정복을 입고 있었다. 휴가라는 자각이 있기는 한 건가, 저 녀석. 그러는 본인도 해가 겨우 뜨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에 연무장으로 나온 주제에 하나부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도 열심이로군, 아오이.”
하나부사의 목소리에 아오이는 휘두르던 검을 멈췄다. 우아한 자세로 검을 검집에 넣은 후 간단하게 목례했다. 아무리 둔한 아오이라 해도 하나부사의 목소리에 못마땅한 기색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아오이는 한 쪽 입꼬리만 비틀어 올린 하나부사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실감이 안 나서 말입니다.”
“쉰다는 것이?”
“예.”
아오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부사는 아오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오이가 히카게마치의 카타나슈에 부임한 이후 히카게마치의 그 누구도 이렇게 긴 휴가를 받은 적 없었다. 하나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와 같군.”
“……머리도 복잡하고요.”
하나부사는 아오이의 행색을 살폈다. 대충 보기에는 말끔한 꼴을 하고 있었으나 간밤 잠을 설친 듯 눈 밑이 살짝 거뭇했다. 히카게마치에서 벌어질 법한, 아오이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사고는 카마이타치나 오니비의 탈주 정도밖에 없을 터. 그리고 그 두 요괴는 구미호의 라멘 가게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그 보호 아래에서 뻗었다. 하나부사로서는 아오이가 고민하는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건 왜지?”
아오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나부사에게 질문을 돌려주었다.
“……하나부사 대장, 히카게마치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풍습이 남아있습니까?”
하나부사는 잠시 굳어 눈을 깜박였다. 이 녀석, 진심으로 질문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질문이었다. 요괴들에게 그런 풍습이 있을 리가 없다. 히카게마치에 부임한 지 몇 년인데 이런 것을 모른단 말인가. 그러나 아오이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요괴들 사이에서 그런 풍습이 있을 리 없잖아.”
“……처음 보는 여자 요괴가, 자신을 미망이라 소개하기에.”
“미망?”
“예.”
아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미망이라. 자신에 대한 소개말로는 끔찍한 것이나, 단순 과부 이상의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단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지 물어보려는 차, 아오이가 말을 이었다.
“보고하겠습니다. 어제 저녁 여섯 시경 히카게마치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환계 깊은 곳에 있는 장소 전체가 거리까지 내려온 모양으로, 버려져 있던 신사가 깨끗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을 순찰…… 산책 도중 발견했습니다.”
순찰이라고 했지. 저 녀석. 어제가 휴가의 시작이었는데. 하나부사는 어이없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곳에 뭉친 강력한 요력이 흩어지길 기다렸다가 신사로 진입했는데.”
“보고가 먼저 아닌가?”
“저는 ‘휴가 중’이었으니까요.”
휴가를 제대로 보내지도 않는 주제에 휴가 중이라는 핑계는 잘도 써먹는군. 하나부사는 이마를 짚었다.
“하아……. 여전히 위험한 상황을 가리지 않는군. 그래서?”
“그 신사에서 웬 여성 요괴를 만난 겁니다. 머리카락은 잘 익은 벼 색깔이고, 소매가 적어도 무릎까지는 오는 푸른 후리소데를 입고 있었습니다. ‘주인께서 계시지 않아 참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주인ご主人さま?”
하나부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귀한 이들이나 입는 소매가 긴 후리소데보다도, 단어 선택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아오이가 말한 단어는 단순히 주인을 칭하는 말이 아닌, 남편을 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100년쯤 전 자리 잡은 문화였지만, 오래된 신사의 무녀나 신의 권속이라면 다른 단어로 칭했을 터다. 일부러 헷갈리게 말했을 수도 있으나, 정말 죽은 신의 신부라도 된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애매한 지칭에 혼란해하는 하나부사를 앞에 두고 아오이가 말을 계속했다.
“예. 신부인지, 권속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만 쉬다 가길 원한다면 있어도 좋아요.’라고 하기에, 탐문을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이며, 이 신사는 왜 갑자기 환계에서 내려온 것인지 따위를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은 단순한 미망이며, 주인께서 아끼던 이가 오랜만에 검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어 마을로 나온 것이라 하더군요. 신사를 비울 순 없으니 신사 또한 함께.”
“모시는 신이 없는데도 굉장한 요력이군. 미즈치 정도나 되어야 가능할까.”
중얼거리자, 아오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조금 불퉁한 목소리였다.
“예. 미즈치 님의 언급도 있었습니다.”
“미즈치의?”
미즈치 또한 인간들 사이에서 수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요괴였다. 그만큼 강한 요력을 가진 요괴라면 서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 아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미즈치 님을 만난다면 신사에 한 번쯤 방문해 주십사 하고 전해달라 부탁하더군요. 하나부사 대장은 미즈치 님과 가끔 술잔을 기울이시니,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거대한 움직임이라면 미즈치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전하도록 하지. 다른 특이사항은?”
“이름……을 묻자, 곤란해하더군요.”
하나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다. 요괴의 진명을 아는 사람은 그 요괴를 부릴 수 있으니까. 하나부사는 지난 오번승부 소동 때 카사네가 미즈치를 부렸던 것을 떠올리고는 피곤한 표정을 했다. 아오이가 말을 이었다.
“이름을 묻자, ‘주인께서 주신 것은 주인이 돌아가시며 모두 소멸해 알려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캐묻자 결국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하더군요. ‘카오리가 부탁했다 하면 아실 거예요.’라고.”
“카오리, 라…….”
카오리. 감사를 위해 히카게마치의 요괴명부를 재편하는 작업을 총괄한 하나부사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긴, 그는 미즈치의 이름도 지난번 오번승부 때 처음 들어보았다. 요력이 높은 요괴들은 대부분 환계에서 지내므로 카타나슈 대원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탓이다. 아오이에게 ‘카오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요괴 또한 카타나슈가 설립되고 기록을 시작하기도 전에 환계에 틀어박혔을 테다.
히카게마치에 상주하는 요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카오리 또한 인간에게 우호적인 요괴 같았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아오이를 거칠게 내쫓거나 공격하지 않고 다만 공손하게 축객령을 내렸으니 말이다. 모시던 신이 이미 사라진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종복이 그만한 요력을 가졌다면 신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을지 알 수 없다. 그러한 신이 인간들을 적대했다면……. 하나부사는 상상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이는 그런 하나부사의 안색을 살폈다. 하나부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그 요괴가 얼마나 위험할지 판단하고 있을 테다. 아오이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하나부사에게 제안했다.
“하나부사 대장이 직접 확인하시겠습니까?”
“새로운 주민을 바로 기록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인사 정도야 나눌 필요가 있겠지. 안내하도록.”
💍
신사는 히카게마치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고, 카타나슈는 히카게마치의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걷는 동안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하나부사와 아오이는 잡담을 하며 걸었다.
“더 특이한 점은 없었나?”
“없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리 강한 요력인데도 여자 주변에 작은 요괴들이 없었다는 점일까요. 요력이 강한 요괴들 주변에는 작은 요괴들이 몰려들잖습니까.”
“흘러나오는 요력을 감출 만큼 강한 요괴거나, 요력을 대부분 써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위험한 이가 아니면 좋겠군.”
아오이는 그리 말하는 하나부사를 힐끔 쳐다보곤 한 마디 덧붙였다.
“제 판단으로는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네 판단력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오이. 다만,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아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부사가 경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현실을 환상과 뒤바꿀 정도로 강력한 요괴가 환계에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중 하나만 히카게마치의 바깥으로 나돌아도 커다란 문제가 된다. 히카게마치의 카타나슈는 전력이 약하므로 그런 요괴가 악한 마음을 먹고 진심으로 사람을 해하려 한다면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2번대의 카사네가 지난번과 같은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었다.
아오이는 마음 속에서 그 여자를 떠올렸다. 자신을 미망未亡이라 소개한 여자. 먼저 죽은 신을 따라 죽지 못한 신의 신부가 그다지 악한 성정을 지닐 것 같진 않았다. 신의 종복이라 하여 무작정 선한 이라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지만, 아오이는 그 여자가 위험하지 않다고 믿었다. 이유는 없었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요괴의 위험성을 끝까지 의심했을 것이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평가를 믿지 못하는 상관에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오이는 묵묵히 신사로 향하는 길을 앞장섰다.
히카게마치가 워낙 작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걷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히카게마치는 본래 거대한 호수가 있던 곳이라고 했던가. 히카게마치 전역을 덮은 호수였다면 그 규모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거대한 호수였을 테다. 산의 초입, 환계와의 경계 사이에 신사가 존재했을 터. 아오이는 히카게마치 전역을 뒤덮은 거대한 호수를 떠올렸다. 분명 아주 크고, 맑은 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아오이의 가문이 모시던 신이 태어난 호수만큼이나.
그 광오한 크기에 대한 상상은 하나부사의 말에 의해 깨져나갔다. 하나부사가 깨끗한 거리를 보며 심란한 얼굴로 말했던 것이다.
“이 주변까지 개찬한 건가.”
“아뇨. 어제는 이렇게까지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청소했다는 거군.”
“예. 아마 그 요괴가 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 아마 그렇겠지.”
신사의 앞에 서서 하나부사가 말했다. 아오이는 새로 지은 것처럼 깨끗해진 신사를 바라보았다. 담장은 낮았고, 토리이 안은 훤히 들여다보였다.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잘 몰랐는데, 토리이의 안은 보이는 것보다 꽤나 넓었다.
안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자 한 여자가 조그마한 요괴들을 부리며 우물에서 물을 긷는 모습이 보였다. 소매가 넓은 흰 후리소데를 입고 있는 여자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작은 요괴들이 건네준 물통을 떨어트렸다. 그 와중에도 요력을 사용해 물을 붙잡았는지 물통은 바닥에 떨어졌으나 물은 바닥과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떠 있었다.
여자는 당황한 듯 눈을 깜박이다가, 아오이와 하나부사가 그에게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물통과 물을 정리한 여자가 하나부사와 아오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참배객 분들이시지요? 죄송하지만, 현재 신사에는 주인께서 계시지 않아 참배가 어렵습니다.”
“아. 참배를 하러 온 것은 아니다. 놀라게 한 것 같아 미안하군.”
“아니에요. 이리 이른 시간부터 객이 오실 줄 몰랐던지라…… 호수신의 신사에는 무슨 일이신지요?”
단정한 얼굴에 순식간에 경계가 떠올랐다. 하나부사가 살짝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히카게마치를 관리하는 카타나슈의 1번대 대장 하나부사. 신사가 환계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차 방문했다. 환계에서 요괴가 내려오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아…… 그러셨군요. 확실히, 환계에 틀어박힌 이들이 인계까지 내려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요. 저는 단순한 미망으로, 카오리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흐트러진 모습을 용서해 주시길.”
“신경쓰지 않아. 오히려 이리 이른 시간에 찾아와 미안하군. 인계까지는 어째서 내려왔나?”
“작은 요괴 아이들이, 재밌는 일이 생겼다며 인계에 와 보라 종용하기에…… 신사를 비울 수는 없어, 모두와 함께 내려왔답니다. 미즈치 님이 인간과 검을 맞댄다는 소식에 그만…….”
그리 말하며 카오리가 민망한 듯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하나부사와 아오이는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미즈치가 인간과 승부한 일은 벌써 한 달 전인 오번승부 소동을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오번승부가 이미 한 달 전에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카오리가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씨로 말했다.
“……주인께서 아시면 어찌 그리 무모하냐며 경을 치시겠지만, 그래도 궁금했답니다. 꼬마 오니비부터 미즈치 님까지 나서신다니. 그리 재미있는 구경은 또 없겠지요. 함께 내려오느라 조금 늦었긴 하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겠죠?”
“……혹시, 말씀하시는 승부가 ‘오번승부’입니까?”
조심스럽게 되묻자, 카오리가 해사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아이들이 그리 말하는 것을 들었답니다.”
“죄송하지만, ‘오번승부’는 한 달도 전에 끝났습니다.”
“어머……. 제가 한 발, 아니, 여러 발 늦은 모양이군요.”
“그런 셈이지요. 아쉽게 되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아오이는 카오리를 살폈다. 눈을 내리깔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선량해 보였다. 분명 오래 산 요괴임에도 ‘어쩌면 순진한 여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아오이는 다시금 하나부사 쪽을 쳐다보았다. 하나부사 쪽도 카오리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카오리가 손을 내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군요……. 그래도, 인계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니, 당분간 이 곳에 머무르려 해요. 주인께서는 부재하시나, 가끔 이 신사에 방문해주시면 차라도 내어드릴게요. 그 때는 오번승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 시간이 나면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언제까지고 객을 이리 세워둘 수 없는 노릇이니, 잠시 차라도 들고 가시겠어요?”
아오이가 하나부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럴 때에는 상급자의 뜻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아. 이른 아침부터 귀찮게 할 수는 없지.”
“예. 그렇다면 부디 다음에 방문해 주세요. 주인께서는 부재중이시나, 잠시 쉬다 가시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이른 아침에 실례했습니다.”
아오이가 공손하게 인사하고 하나부사와 함께 다시 카타나슈 본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사가 충분히 멀어지고 나자 아오이가 입을 열었다.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는 평, 동의하십니까?”
“그래. 그리 위험해 보이진 않는군.”
“신의 종복이라 그런지, 어쩐지 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길들여진 개 같은 것이지.”
“예. 비유는 그리 적절치 못한 것 같지만…… 뜻은 알겠습니다.”
앞서 성큼성큼 걷던 하나부사가 아오이를 돌아보았다. 이런 류의 토 달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기에, 아오이는 조금 긴장했다.
“아오이.”
“예.”
“저 여자가 신경 쓰이나?”
아오이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럼, 신경 쓰이지 않겠나. 떠들썩하게 노는 것 좋아하는 요괴들과는 다르게 혼자 양갓집 규수처럼 구는 여자가. 오늘은 이름을 말했지만, 어제 말한 미망이라는 단어도 제법 신경 쓰였다. 순순히 ‘그러지 않을 이유 있습니까?’ 하고 되물으려던 아오이는, 번뜩 하나부사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하나부사는, 나름 돌려말했다만 ‘저 요괴 여자에게 관심 있나?’라는 질문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안쓰러이 보느냐 질문하신 것이라면, 예. 남녀로서 관심이 있는 것이냐 질문하신 거라면, 아니요.”
“아오이 네가 여자에 정신 팔 것 같진 않지만…… 요괴들은 교활한 자들이다.”
“그 여자가 길들여진 개나 고양이 같다고 말씀하신 건 하나부사 님 아니십니까?”
“우리가 그 여자와 얼마나 대화했지?”
“길어봐야 20분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오이가 천천히 하나부사의 말을 기다렸다. 하나부사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라오는 아오이에게 천천히 말했다.
“그래. 15분 정도. 그 정도 시간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제가 미숙했습니다. 대장.”
“아오이, 너는 젊다. 아니, 어리지. 네 미숙함을 탓한 게 아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 뿐.”
“그는 무엇입니까?”
하나부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요괴에게 너무 마음을 주지 마라.”
“제가 그 여자에게 이름을 알려줄까 두려우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아오이 네가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만에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공사의 구분 정도는 합니다.”
“요괴가 네 이름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믿겠다.”
하나부사의 말 뒤로, 아오이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하나부사의 말이 옳다. 요괴는 아무리 선량하고 순진하게 보여도 위험한 이들이다. 단지 ‘그렇게 믿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해할 거라 단정짓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
아오이는 한숨을 쉬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이성을 되찾아야 했다. 카오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을 것처럼 난약하게 생긴 여자지만, 그 외모에 홀려 그를 무해하고 연약한 요괴라고 판단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공손한 태도나 카오리가 말한 미망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일지도 몰랐다. 카오리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를 경계해야 할 이유만이 늘어났다.
‘하지만…….’
아오이는 제 입술을 씹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위험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카오리를 믿고 싶었다. 카오리가 그에게 부탁한 적 없음에도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오랫도록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할 테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
우타처럼 하나부사 앞에서 역정을 내지는 않았지만, 아오이 또한 나흘 간의 휴가가 전혀 의미없다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히카게마치의 카타나슈는 한 사람의 부재에도 다른 사람의 일거리가 감당 못 할 수준으로 늘어나는 곳이다. 2번대가 있다 하더라도 서류 업무나 했을 책상물림들이 직접 현장을 뛰는 1번대의 업무를 소화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히카게마치를 한 번 둘러보는 것으로도 쓰러질 인간들의 뭘 믿고…….’
아오이는 편안한 차림으로 히카게마치의 거리를 걸어가며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새로 온 2번대 대장도, 직위가 강등되어 돌아온 카사네와 마도카도 마음에 차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우타의 불평불만에도 하나부사는 ‘윗분들도 다 생각이 있으실 테다.’라는 말밖에는 하지 않았다. 돌아온 두 사람이 아오이보다도 직위가 낮아졌다는 것 하나밖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히카게마치의 반대편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신사에 가까워져 있었다. 신사는 외진 곳에 있어 본래 사람이나 요괴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장소였으나, 환계에 있던 신사가 내려온 이후에는 조금 바뀐 것 같았다. 느즈막한 오후라 대부분의 요괴는 바깥에 널려 햇빛을 받고 있거나 중앙 광장에 모여 장난을 치고 있을 텐데, 신사의 근처인 이곳까지 웃음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맑은 웃음소리. 그 소리의 진원지는 신사임이 분명했다. 이 근방에는 신사 외에는 다른 건물이나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소가 없으니 당연한 추론이다.
‘그 여자, 분명 신사에 방문해도 좋다고 했지.’
히카게마치의 신사를 생각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여자였다. 주인의 죽음 이후 오랫도록 홀로 신사를 지켜왔을 여자. 주인을 따라 죽지 못한 죄인이라고 자신을 칭하던 여자. 밀색 머리카락에 순진해 보이는 갈색 눈을 한, 푸른색 후리소데를 입은…….
여자를 생각하자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귀에 혈액이 맥동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아오이는 갑작스러운 반응의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눈을 했다. 신체 건강한 군인인 아오이가 키가 제 가슴팍까지밖에 오지 못하는 여자를 두려워할 리는 없으니 두려움은 아닐 테다. 아오이는 어리둥절하여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몇 달 전 시행한 건강 검진에서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심장에 문제가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심장 문제가 아니라면 더 문제다.
꼭, 그 여자에게 어떤 감정이라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 이를테면, 사랑 같은 감정을.
아오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수신을 모시는 신관 가문 출신인 내가 요괴를 사랑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 그 여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 않는가……. 단순한 눈짓과 말 몇 마디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아오이는 첫 눈에 상대에게 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에게 빠지는 일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백 번 양보하여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끌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랑에서 빠져나오기 십상이다. 애초 모르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미지에 환상을 덧붙여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 제대로 된 감정이 아니라는 뜻이지.’
아오이는 잠시 멈춰서 심호흡을 했다. 그래.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은 상대에게 실례되는 행동이다. 그리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도 같았다. 아오이는 다시 신사 쪽으로 걸어갔다. 발음까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신사에서는 남녀가 정답게 대화하며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신사에 가까워질수록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싶었더니, 신사의 담장 너머로 키 큰 남자의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미즈치였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 미즈치 님을 불러달라고 했었던가.’
두 요괴는 어떤 관계이기에 굳이 미즈치 님을 불러달라고 한 걸까. 그런 생각이 마음을 비집고 올라왔다. 히카게마치는 넓은 지역이 아니므로 이곳에 사는 요괴들 모두 안면 정도는 트고 지낼 테지만, 아오이로서는 불만이 올라왔다. 미즈치와 카오리가 친한 문득 카오리를 처음 만난 날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인께서 아끼는 이가, 인간과 칼을 맞대신다기에…….’
양 볼을 복숭아 색으로 붉히며 그리 말했던가. 그 ‘주인’께서 아끼는 이는 아마도 미즈치겠지. 이후 미즈치 님께 한번 방문해달라 연락을 전해달라 하였으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오리는 미즈치를 보기 위해 현실을 개찬해가며 환계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어쩐지 속이 쓰렸다. 나빠지려는 기분을 애써 가라앉힌 채 아오이는 토리이를 지났다. 체격 좋은 미즈치의 뒤에 있어 카오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기분이 점점 더 가라앉았다.
‘저 요괴 여자가 뭐라고…….’
그러나 생각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여자 요괴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 아오이는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어째서 카오리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뒤흔드는 건지 외면하고, 아오이는 평소와 같은 단정한 얼굴로 걸었다. 두 사람의 세계에 빠진 요괴들에게 부러 인기척을 내며 다가갔다. 카오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미즈치의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아오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의아한 표정을 한 얼굴에 화색이 피어올랐다.
“아! 카타나슈에서 오신 분이군요. 오번승부 때의 이야기를 해 주시러 오셨나요?”
“휴가 중이라 시간이 나서 방문해 봤습니다. ……미즈치 님이 계실 줄은 몰랐군요.”
“하나부사에게서 카오리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카오리가 잘 지냈는지 궁금해서 보러 왔지. 홀로 인계까지 내려오다니. 대단한걸. 그 분이 아신다면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하시겠어.”
“미즈치 님!”
카오리가 미즈치의 이름을 부르며 볼을 붉혔다. 첫 날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기품 있는 미소와는 다른, 꾸며내지 않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카오리가 아오이를 힐끔거렸다. 그 부끄러워 보이는 얼굴에 아오이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두 요괴는 서로가 무척이나 편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잘 어울렸다. 미즈치와 카오리의 나이 차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요괴 사이에서 나이 차이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다. 아오이는 괜히 심사가 뒤틀려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이미 이야기해드릴 분을 구하신 모양이군요. 그럼 저는…….”
“자, 잠시만요!”
카오리가 급하게 아오이의 발길을 붙잡았다. 목소리가 제법 다급했다. 성급하게 큰 목소리를 낸 것이 후회되는지 그러지 않아도 붉었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부끄러운지 카오리가 얼굴을 푹 숙였다가 다시 쳐들었다. 후리소데 소매자락 아래에서 손가락이 꼬물대는 것이 보였다. 카오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오이에게 질문했다.
“저, 저… 카타나슈와 신사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예. 히카게마치의 끝과 끝입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잠시 차라도 들고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첫 방문 때도 그렇고, 두 번째 방문 때도 그렇고. 찾아와 주신 손님을 대접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지라…….”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말을 뱉었지만, 말에는 제법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아오이는 그런 말보다는, 부끄러움에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에 시선을 뒀다. 붉어진 얼굴이 꼭 반들반들 잘 익은 홍옥처럼 예뻤다. 발길을 돌리려던 아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권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다.
“그렇다면 잠시 내실로 들어가 계시겠어요? 금방 차를 내어 올게요.”
아오이가 승낙하자 카오리의 낯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카오리가 손짓하여 작은 요괴들에게 내실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라 한 이후, 우물 쪽으로 종종거리며 걸어갔다.
소매가 넓은 후리소데는 물을 직접 만질 일이 적은 고위층들이나 입는 것. 양갓집 규수 같은 그가 찻물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손님된 자로서 주방까지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방으로 사라진 카오리의 뒷모습을 계속 눈으로 좇는 아오이에게 미즈치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카오리가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저 아이가 저러는 것, 나도 처음 보거든. 믿어도 돼.”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만……. 믿겠습니다.”
미즈치는 익숙한 듯 응접실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병아리같이 생긴 요괴가 바짓자락을 끌기에 아오이는 어쩔 수 없이 미즈치를 따라 들어갔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 아오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쩐지 기분이 상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오이에게 미즈치가 질문했다.
“아오이는 원래 말이 없는 성정이니?”
“생각해본 일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들어본 적은 있군요.”
“아하. 하나부사 같은 타입이구나.”
“하나부사 대장보다는 융통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알겠어. 어떤 유형인지. 이런 녀석이 친해지면 귀엽게 굴지.”
“귀염성 있다는 말은 본가의 형님께 빼고는 난생 처음 들어봅니다만…….”
미즈치가 그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 귀엽지 않을 리가! 나름 감정을 숨기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고 질투하는 것을 훤히 보여주는데 귀엽지 않을 리가 없다. 상대의 미숙함을 귀여움으로 바라보는 것은 좋은 자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즈치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러한 아오이의 미숙함이 귀엽게 보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카오리를 두고 나에게 질투라니. 미즈치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병아리 요괴들이 작은 날개로 내실의 문을 열었다. 내실은 완전한 일본풍의, 단정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미즈치는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카오리와 오랫동안 교류한 듯 미즈치는 이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다. 주인의 자리를 남겨두고 미즈치는 객의 자리에 앉았다. 아오이가 그 맞은편 방석에 절도 있는 자세로 앉았다.
아오이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휴가 중이라지만, 요괴의 집에 초대받아 교류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히카게마치의 카타나슈에서 평생을 보낼 것도 아니니 요괴와 친해지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신사의 건물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뭐, 초대 한 번으로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지금 뭐 하자는 건지…….’
그 사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아오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미즈치와 마주앉아 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던 탓이다. 차라리 칼을 맞대어 보라면 할 수 있을 텐데, 요괴와 친교를 위한 대화를 하라니. 인간 친우도 별로 없는 아오이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마침 아오이 군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대답해줄 수 있겠니?”
“무엇입니까?”
“우리 카오리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우리’ 카오리와 어떻게 알게 되었냐니. 꼭 그에게 영역 표시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아오이는 있는 그대로 답했다.
“환계에서 신사가 내려오며 현실이 개찬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강력한 요력을 느끼고 신사에 들어가서 말을 걸었지요.”
“흐음. 그렇구나.”
미즈치가 제 턱을 붙잡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마저 친분을 과시하는 것 같아 아오이는 다시금 심사가 비틀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미즈치가 어째서 그런 것을 질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오리에게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 운을 띄운 것일까. 그러나 미즈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그렇구나……” 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이는 미즈치에게, 아오이가 성급하게 말을 붙였다.
“미즈치 님은.”
“음?”
아오이는 입을 열자마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을 물릴 수는 없었다.
“카오리 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즈치는 의아한 얼굴로 아오이를 보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크게 웃음을 터트리려다 만 것 같았다. 도대체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이기에 이러한 질문에 웃음을 터트리는 건지 아오이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순간 만면에 커다란 웃음을 짓고 있던 미즈치의 표정이 조금 씁쓸하게 변했다. 조금 곤란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도 말이지…….”
“하나부사 님의 안부가 아닌, 카오리 씨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가장 먼저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음……. 카오리를 어떻게 생각하냐라니… 안쓰럽다고 하는 것이 옳을까.”
“안쓰럽다, 고요.”
미즈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이는 민망함에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한 것과는 영 다른 관계인 모양이었다. 미즈치가 여전히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내가 카오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아오이 군이 생각하는 것처럼 연정은 품고 있지 않아.”
미즈치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숨긴다고 노력은 해보았지만 아오이의 속내는 미즈치에게 이미 꿰뚫려 있었다. 미즈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민망해하지 마.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다 보이는 법이니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가 보구나? 알았다. 그 이야기는 이 이상 하지 않도록 하지.”
“두 분이 각별한 사이처럼 보인 탓에 궁금증이 일었을 뿐이니, 부디 잊어 주십시오.”
그런 말을 하는 아오이의 얼굴은 이미 민망함에 어느 정도 붉어져 있었다. 미즈치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호탕한 웃음소리에 아오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미즈치가 웃음을 그치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오이 군은, 카오리의 양부에 대해 아니?”
“……아니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것은 아니나…… 오히려 이 자리에 본인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듣고 싶으냐?”
아오이는 직감했다. 이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카오리를 단순히 ‘현실을 개찬할 정도로 강력한 요괴’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게 된다면 아오이에게는 더 이상 제 감정을 회피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러기에 아오이는 거절해야만 했다.
그래. 마음을 이대로 멈추려면 거절해야만 하는데…….
아오이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인 자신을 발견하고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이 이상으로 그 요괴에 관련되어서 어쩌자는 말인가. 나는 도대체 그 요괴와 무엇을 하고 싶어서 이런단 말인가. 흔해 빠진 연애놀음이라도 하려는 건가? 마음을 주어서, 꼬임에 넘어가 이름이라도 알려줄 셈인가?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미즈치가 입을 열자 사라졌다.
“아오이 군. 호수신에 대해 알고 있나?”
“히카게마치에 있었다는 호수의 신 말씀이시군요. 그 호수가 마르며 히카게마치에 환계와의 통로가 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 거대한 호수였지. 호수신이 죽고 나서 말라 버렸지만.”
미즈치는 오래 전의 일을 생각하는 듯 잠시 내실의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신사의 정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아오이는 아주 오래 전을 회상하는 미즈치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았다. 미즈치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카오리의 양부는, 이 히카게마치의 호수신이었다.”
아오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박거렸다. 한낱 요괴가 신의 양자가 되다니, 그럴 수 있는 것인가? 격의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요괴에게 그것이 가당키나 한가? 아오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미즈치가 계속 말했다.
“한낱 뱀 요괴가 신의 양녀가 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아오이 군. 원래 사랑은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오는 것이란다.”
“호수신께서 카오리 씨를 사랑하셨습니까?”
호수신에게 거둬진 카오리가 호수신의 신부가 되었다 하면, 카오리가 호수신을 ‘주인님ご主人様’이라 부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호수신은 카오리의 남편이자 보호자였을 테니까.
아오이의 성급한 질문에 미즈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호수신은 카오리에게 이름을 주고,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인 것처럼 대했다. 험한 것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고, 카오리가 천수를 다할 때까지 제 어린 자식으로서 보살피고자 했지.”
“……그렇, 습니까.”
아오이는 한 순간이라지만 엄한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신이라는 자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카오리의 행동거지나 말하는 양이, 과하게 천진하고 규방 규수 같지 않던가?”
“……그제 처음 만났을 뿐이므로, 저는 카오리 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가? 아오이 군은 신중한 성격이로군.”
“칭찬 감사드립니다.”
신중한 성격이라니. 아오이는 고소를 머금었다. 세상의 그 어떤 신중한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해 이리도 머저리같이 군단 말인가.
“아무튼…… 그렇기에 카오리는 내게 각별해. 호수신은 내 오랜 친우였거든.”
“……그러셨군요.”
아오이는 민망하여 탁자의 무늬에 시선을 두었다. 오랜 친우의 딸과 연인 관계로 여겨지다니. 미즈치의 웃음도 이해가 간다. 오히려 처음부터 비웃지 않아 감사할 지경이었다. 미즈치에 대한 감사를 속으로 삼키며, 아오이는 카오리를 생각했다. 미즈치 앞에서 보이던 천진해 보이던 웃음, 순진한 눈매. 카오리도 아오이가 미즈치와 자신을 연인으로 오해했다면 깔깔 웃지 않을지에 대해.
아. 또 다시 카오리의 생각이다. 아무리 반했다지만 이건 중증 아닌가. 아오이가 자괴감에 빠져있을 동안 바깥에서 병아리 요괴가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오리가 차를 준비해온 것이다.
“저,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십시오.”
병아리 요괴가 작은 날개로 문을 열고, 카오리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어느새 옷을 바꿔입은 것인지 옷이 금붕어 무늬가 들어간 쪽빛 후리소데로 바뀌어 있었다. 카오리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병아리들이 두 분께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것 같다기에, 손님맞이에 적합한 옷으로 갈아입고 왔어요. 중요한 이야기는 다 끝내셨는지요?”
“그래. 착하구나. 덕분에 이야기를 다 끝냈다.”
“제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런지요?”
“딱 맞춰 오셨습니다.”
카오리의 걱정을 아오이가 딱 잘랐다. “다행입니다.” 하고 카오리가 웃었다. 병아리들이 차와 다탁을 준비했다. 카오리의 웃음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미즈치가 제 앞에 찻잔을 놓으려는 병아리를 말렸다.
“나는 이제 가 보아야 하니, 내 몫은 됐어.”
“얼마 안 계신 것 같은데, 벌써 가시나요?”
“그래. 둘이서 즐거이 이야기 나누거라.”
“미, 미즈치 님!”
미즈치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카오리가 당황하여 미즈치를 불렀으나, 미즈치는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다. 미즈치의 부재에 당황한 것은 아오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관 교육을 받아,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당황한 카오리가 ‘이제 어떡하면 좋죠.’라는 얼굴로 아오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오이가 한숨을 얕게 쉬고선 카오리에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카오리 씨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무, 무엇인가요?”
볼이 빨개진 얼굴이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아오이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어째서, 미망未亡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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