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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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9 09:01

기말고사의 마지막 날,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난 유키는 부스스한 머리로 방을 나섰다. 방 안에 그림이 없었다. 부스러질 듯한 하얀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복도를 걸어가자 복도를 배회하던 고스트들이 비명을 질렀다.


“히익―! 아, 뭐야. 유키니?”

“고스트라도 본 얼굴이네요. 고스트는 본인이면서.”


유키가 입을 삐죽였다. 고스트가 미안하다며 없는 머리를 긁적였다. 유키는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며 고스트에게 질문했다.


“그것보다, 그림 못 봤어요?”

“그림 도령 말이니? 1층 공부방에서 책을 읽는 것 같던데.”

“그림이 공부를요?”


믿기지 않는다는 투였다. 하츠라뷸의 바보 듀오와 함께 제법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그림이 공부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탓이다. 유키가 부은 눈을 땡그랗게 뜨자 고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습서를 읽고 있는 것 같던데.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림이 요새 우리한테 부쩍 비밀이 많아진 것 같지 않아요?”

“아이의 성장이란 그런 법이니까!”

“어른 같은 말을 하시네요.”

“히힛, 유키와 그림 도령보다는 훨씬 나이를 먹긴 했지!”


고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날아가버렸다. 낡은 기숙사의 고스트는 나이를 먹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있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유키는 괜히 찜찜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키는 그림이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저 몰래 위험한 사람과 계약을 해버린 그림이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 유키를 불안하게 했다.


유키는 1층의 공부방 문을 노크도 않고 냅다 열었다. 불안을 숨기지 못한 탓인지 손속이 평소와는 달리 거칠었다. 문을 거칠게 여는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그림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엇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외우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으나, 유키로서는 제가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르는 것이 조금은 서운했다.


“응용 문제의 경향은⋯⋯ 2개 선택지가 있으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으로 찍어서⋯⋯.”

“그림, 설마 아침부터 공부하는 거야?”


그림의 손에는 역시나 회청색 자습서가 들려 있었다. 그림이 소스라치게 놀라 자습서를 숨기고 유키를 돌아보았다. 자습서는 제법 큰 크기였기 때문에 그림의 덩치로는 제대로 숨겨지지도 않았다. 유키는 한숨을 쉬고 싶은 마음을 애써 내리눌렀다.


‘그림. 다 보여.’


그림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으악! 갑자기 말 걸지 말라구! 깜짝 놀라서 외우던 거 다 잊어버리게 되니까!”

“벼락치기 한다 해서 그림의 성적이 나아질 것 같진 않은데.”

“그건 마지막까지 해 봐야 아는 거라구~! 유키는 이번에 내 발목이나 잡지 말라구!”


그림이 바락바락 화를 냈다. 아즐이 그림에게 거래의 대가로 준 족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유키는 팔짱을 끼고 흥, 콧방귀를 뀌었다.


“그림에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은걸. 아침 먹고 시험이나 보러 가자.”

“와! 시험 날 아침이니까 특식으로 참치캔 어떠냐구!”

“참치캔은 저녁에. 고생하고 먹는 게 더 맛있잖아?”

“그것도 그렇다구. 밥 먹고 옷 갈아입고 가자구!”



* * *




“거기까지다, 강아지들. 순순히 펜을 놓고 답안지를 앞으로 보내도록.”


3교시 ‘점성술의 기초’를 마지막으로 모든 시험이 끝났다. 펜을 놓은 학생들이 각자 작성한 답안지를 앞으로 전달했다. 답안지의 개수를 확인한 크루웰 선생이 답안지를 정리하며 말했다.


“A반의 기말고사는 이것으로 전과목 종료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악동들이 기분 좋은 듯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자리에서 일어서서 넥타이나 블레이저를 휘돌리는 학생도 있었다. 크루웰은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소리쳤다.


“앉아라! 날뛰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은 Bad Boy들은 윈터 홀리데이를 보충 수업으로 헛되게 만들어 줄 테니 각오하고 있도록. 그럼 해산.”


크루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에이스가 소리쳤다.


“이야―! 끝났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남은 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인가.”

“후후, 이 몸에게는 이 따위 테스트, 쉽다구!”


자랑스럽게 외치는 그림을 유키가 흘겨보았다. 오늘 아침까지 벼락치기 했던 건 누구더라. 그러나 굳이 무안을 줄 이유도 없었기에 유키는 다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므로 반박은 유키가 아니라 에이스 쪽에서 나왔다.


“응? 너 항상 필기 시험 이후에는 하늘 무너진 얼굴 했으면서, 이번엔 되게 자신 있다?”

“헤헹― 오늘의 이 몸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고. 이제부터는 ‘대천재 그림 님! 공부를 알려주세요!’ 라고 말할 준비나 해!”

“그런 말 할 수 있는 날 오면 좋겠네. 이번에도 내가 이기면 그림이 한 달간 담화실 청소하는 거 어때?”


유키가 장난스럽게 그림을 놀렸다. 그림이 “유키나 그 말 후회하지 말라구!” 하고 빽 소리쳤다. 듀스가 귀를 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감이지만, 그림. 이번에는 나도 질 자신이 없다. 담화실 청소 힘내고.”

“왜 내가 담화실 청소하는 게 기정사실이 되어 있는 거야?! 듀스 너는 낙제나 하지 말라구!”


듀스의 발언에 그림이 삿대질하며 왁왁댔다. 에이스를 제외한 1-A의 바보 트리오는 사실 항상 낙제점에서 조금 위의 점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에이스와 유키는 대충 비슷한 성적을 받을 한 사람과 한 마수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뭐, 이번에는 나도 여유로웠으니까, 쟤네들한테 질 거 같진 않네.”

“다들 공부 열심히 했구나? 나만 쏙 빼놓고.”

“아, 미안하다니까, 유키이⋯⋯.”


에이스가 손을 모으고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 유키는 흥, 하고 세 바보에게서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됐어. 나는 마지프트 부 연습이나 구경 갈래. 에펠이 빗자루 태워준댔거든.”

“에엑―! 유키, 나님 밤새 공부했더니 졸려서 마지프트 같은 거 못 본다구!”

“그림한테 따라오라는 얘기 안 했어.”


그림이 하늘 무너지는 소리라도 들은 듯 충격받은 표정을 했다. 듀스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유키는 생각보다 뒤끝이 있는 타입이구나.”

“그래. 치사하게 시험 기간 내내 사람 하나 따돌려 놓고 이 정도도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

“아, 진짜 미안하다고. 뭐 하면 화 풀어줄래?”

“글쎄? 너희들이 ‘왜’ 나 빼고 놀았는지 말해주면, 이유 듣고 생각해볼게.”

“윽⋯⋯.”


셋 다 입을 열지 못했다.


‘그야 그렇겠지.’


그림이 계약을 했다면 저 둘이 안 했을 리가 없다. 애초 셋이 공부한다는 것도 유키에게 아즐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렇게 짐작한 유키는 셋을 흘겨보다가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들도 동아리에 얼굴이나 비치러 가. 그림은⋯⋯ 잘 자고.”


그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유키는 도도한 발걸음으로 교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홈룸이 아직 끝나지 않은 B반 안을 기웃거리는 유키를 그림이 울상으로 쳐다보았다. 그림이 제 눈치를 보는 것에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지만, 유키는 그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그림도 마음고생 좀 해 보라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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