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유키] 빨간구두와 함께 춤을! #1
“정말 너희들끼리만 공부해서 되겠어? 에이스는 그렇다 쳐도, 듀스와 그림은 영 못마땅한데.”
그리 말하는 유키는 정말 순수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조롱이나 낮잡아 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듀스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키가 보기에 나는 역시 우등생과는 거리가 있는 거구나…….”
“맞아! 부하. 부하는 나랑 듀스를 너무 무시한다구!”
“그렇지만 말야, 그림은 너무 놀기 좋아하고, 듀스는 옆에서 끈기있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이 없으면 곤란한걸.”
유키가 삐죽거렸다. 나름 ‘그러니까 너희들 옆에는 내가 있어야 해!’ 라는 어필이었지만 어쩐지 역효과만 난 것 같았다. 듀스는 기운이 쭉 빠져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그림은 입을 삐죽 내밀고 유키를 보고 있었다. 그 좋아하는 멘치카츠도 안 먹고 유키를 흘겨보는 것을 보니 여간 삐진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둘 다, 나를 데려가면 되잖아! 점심 먹고도 나만 따돌릴 거야?”
“유키. 공부는 각자도생이야.”
“에이스까지 그러기야?!”
에이스가 도와줄 거라는 생각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보니 어느정도 기대가 쌓였나 보다. 유키가 배신감에 크게 외쳤다. 목소리가 컸는지 주위 학생들이 유키를 쳐다보았다. 시선에 유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곧 “됐어!” 하고 소리쳤다. 먹던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놓인 그릇을 집어들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이, 유키! 먹을 걸 남기면 안 된다구!”
“그럼 그림이 먹든가!”
집어들었던 그릇을 거칠게 내려놓고선 유키는 자리를 떴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목 뒤까지 시뻘개져 있었다. 딱딱한 에나멜 메리제인 구두가 바닥을 밟는 딱딱 소리가 제법 컸다. 그림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멀어져가는 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에이스가 중얼거렸다.
“아— 큰일났네.”
“유키이…… 왜 저러는 거냐구.”
“화난 걸까?”
“안 화났겠냐고. 니들이 자꾸 혼자 공부한다는 게 따돌리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지. 아, 귀찮아……. 어쩔 거냐?”
“마지막 쐐기는 에이스 네가 박았다구!”
“그래서 어쩔 거야? 듀스는 그렇다 쳐도, 그림. 유키는 네 감독생이잖아?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었어?”
그림이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숙였다. 좋아하는 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입 안에 뭔가 집어넣지도 않고 한참 생각하다가, 그림이 고개를 들었다.
“우우…… 어떻게든 될 거라구! 성적 잘 받으면 유키도 이해해 줄 거라구!”
가능한 세게 바닥을 밟으며 뛰쳐나간 유키가 도착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점심을 먹은 그림과 친구들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반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어쩐지 혼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했으니 도서관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괜히 바닥을 발로 두드리던 유키는 사서 선생님에게 눈총을 받고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진짜 셋 다 왜 그러는 거야?’
사서 선생님에게 종이와 펜을 빌린 유키는 문제집을 빌려와 남은 자리에 앉았다. 공부를 해 보려 했지만 바보 트리오에 대한 서운함 때문인지 교과서 내용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도 와닿지 않는 마법 해석학은 물론이고, 국어 지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학교에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곳이 있을 리 없다. 유키는 종이에 마법해석학 수식을 몇 자 끄적이다가 자리에 그대로 엎드렸다. 공부를 하건 도서관에서 잠을 자건 유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키는 기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눈동자를 굴렸다. 평범한 시험 기간 학교 도서관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평범한 학교 도서관의 모습이다. 기출 문제를 모아둔 문제집을 푸는 학생들도 있었고, 분철된 자습서를 읽는 학생들도 있었다. 책상 위로 길게 엎드린 채 도서관 안을 관찰하던 유키는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회청색 표지의 자습서를 보는 사람이 유독 많지 않나?’
회청색 표지의 스프링 제본된 자습서를 보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유명한 문제집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런 유명한 참고서라면 중간고사 때에도 보는 사람이 많았어야 했다. 그러나 중간고사 때 도서관 지박령처럼 도서관에 처박혀 여러 참고서들을 읽고 문제를 풀었는데도 불구, 저렇게 생긴 참고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새로 나온 참고서인가?’
스프링 제본되어 참고서의 이름도,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유키는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옆 자리에 앉은 친구의 손 옆을 툭툭 쳤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질문할 용기도 못 내었겠지만 같은 반 친구 요하네스였다. 요하네스가 의아한 얼굴로 유키 쪽을 돌아보자, 유키가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요한. 저거, 뭔지 알아?”
“저거?”
유키의 손끝을 쳐다볼 때까지만 해도 요한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유키의 손끝이 가리킨 곳은 옥타비넬 학생이 스프링 제본된 참고서를 읽고 있었다. ‘저 참고서가 어쨌다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유키를 돌아보던 요한은 곧 이상한 점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유키에게 손짓했다. 유키의 귓가에 속삭였다.
“안 그래도 가지고 있는 녀석한테 물어봤는데, 전혀 안 알려주더라고.”
“새로 나온 문제집인 걸까? 중간고사 때는 전혀 못 봤는데.”
“그렇지 않을까? 아마 같은 집에서 제본하거나 했겠지.”
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인쇄집이 보통 같은 색지만 가지고 있지는 않지 않나?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래도 ‘새로 나온 환상의 참고서’라는 가설보다는 훨씬 일리 있었다.
“산기슭 거리에 가면 팔려나?”
“그러지 않을까? 오늘 수업 마치면 둘이 산기슭 거리의 서점에 같이 가 볼래?”
“에에, 데이트 신청?”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고.”
요한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유키가 곤란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농담이었는데, 이렇게 진담으로 받아치면 좀 곤란해.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기에 요한이 한 발짝 물러섰다.
“근데 웬일로 혼자 있어? 그림이랑 하츠라뷸의 바보 녀석들은 어디 두고?”
“그게…….”
곤란한 얼굴로 눈을 굴리던 유키의 눈이 금세 세모꼴이 되었다. 그 바보 트리오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화를 내려던 차,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도미 쨩, 친구랑 속닥속닥, 무슨 재밌는 얘기 해?”
애교어린 말투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긴장이 올라온다. 유키는 요한과 당장에 떨어져 뒤를 돌아보았다.
플로이드가 생글생글 웃으며 서 있었다. 유키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플로이드는 지금은 기분이 좋아보이지만 기분이 안 좋아지면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도서관 안이니까 기분이 안 좋아져도 크게 난동은 못 부리겠지만…….
유키와 요한이 굳은 채로 앉아 있자 플로이드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응?”
“새로 나온 참고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헤에, 참고서가 새로 나왔다고? 제이드한테 들었어?”
“아뇨, 다들 같은 참고서로 공부하고 있길래…….”
“오후에 산기슭 거리 서점으로 같이 가 보기로 했습니다. 둘이서요.”
어쩐지 ‘둘이서’를 강조하는 듯했다. 유키가 요한을 흘겨보았지만 요한은 어색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헤에~ 그렇구나. 혹시 이거?”
플로이드가 제 손에 들린 문제집을 들어보였다.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보고 있던 참고서와 같은 것이었다. 달리 거짓말을 할 것도 없기에 유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플로이드가 픽 비웃었다. 기분이 상한 유키가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왜요?”
“에에, 백도미 쨩 화났어?”
“……아뇨.”
금세 꼬리를 내린다. 유키라고 화를 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플로이드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유키는 ‘다들 나한테 왜 이래!’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입술을 삐죽였다.
“아, 백도미 쨩 화 참는 거 웃겨~. 구운 새우처럼 얼굴이 빨개져선. 재밌는 거 보여줬으니까 나도 뭐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플로이드가 순식간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귀에 속삭였다. 귀가 간지러워 유키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거, 산기슭 거리 서점에서는 못 구해.”
“에?”
“그러니까 백도미 쨩의 잡어 친구랑 나가도 소득은 없겠네! 어떻게 생각해, 잡어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셔도…….”
요한이 유키에게만 속삭인 것을 알 방법은 없다. 요한이 곤란한 얼굴로 플로이드를 올려다보았다. 플로이드가 방글방글 웃으면서 유키를 내려다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거라면 바다표범 쨩도 가지고 있는데, 혹시 내가 백도미 쨩 구애 활동 방해한 거?”
“네?”
“아. 그러고 보니 백도미 쨩, 바다표범 쨩의 계약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겠네. 그게 약관이니까.”
“약관……이요?”
유키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플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관이라고 하는 단어는 계약이 오갔을 때나 쓰는 말이다. 일개 학생의 입에서 가볍게 오갈 단어가 아니었다.
‘그림 녀석,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바보 고양이 같으니!’
유키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플로이드를 올려다보자 플로이드가 킥킥 웃었다. 유키를 비웃는 것 같기도, 단순히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한 못된 소년 같은 웃음이었다.
“궁금하면 방과 후에 ‘모스트로 라운지’로 와♡ 아, 모스트로 라운지라면 옥타비넬에 있어.”
“아니, 저는…….”
“백도미 쨩. 우리가 무서워?”
“네?”
“무서운 거지? 항상 제이드만 보면 도망치려고 생각하고. 제이드는 ‘미남이란 희귀한 종족이니 두려워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요.’라느니 했지만, 백도미 쨩 그 날 딱히 우리 잘생겨서 쳐다본 것도 아니잖아.”
플로이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매지컬 시프트 대회 전에 쌍둥이를 지켜봤을 때,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잘생겨서 좀 봤어요! 안 되나요?’ 따위의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유키가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말인데요. 리치 선배들이 잘생긴 건 사실이고…… 저, 얼굴 뜯어먹다가 죽을 예정이라서요.”
“헤에, 그래? 내가 안 무섭다, 이거지?”
“…….”
애교어린 평소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빠졌다. 유키의 얼굴에서도 혈색이 함께 빠져나갔다. 유키는 제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자기보다 키도 크고 강한 사람이 안 무서울 리가 없잖아. 다 알면서…….’
유키 화이트는 사실 겁이 많다. 사람을 온전히 믿기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궁지에 몰렸을 때 유키 화이트는 가끔.
“네. 전혀 안 무서우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에?”
“방과후, 모스트로 라운지라고 했죠? 혼자 가면 되나요?”
“아하하! 백도미 쨩, 정말 재밌는 인간이네!”
플로이드 리치는 배까지 쥐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커지자 근처에서 공부하던 리들이 달려왔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 리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플로이드.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굴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매너조차 모르는 줄은 몰랐는데.”
“하핫, 금붕어 쨩, 백도미 쨩 봤어? 진짜 웃겨!”
리들이 이제 알았다는 듯 유키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이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남자랑 그렇게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유키.”
마지막 말은 거의 한숨에 가까웠다. 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거라면 그렇게 했겠지만요…….’
플로이드는 사서 선생님이 달려오기 직전에 웃음을 멈췄다. 예의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유키의 머리에 제 손을 턱 얹었다.
“그럼 나 기다린다? 꼭 와야 해, 백도미 쨩!”
이렇게 말한 이상 안 갈 수도 없었다. 유키가 이를 악물었다. 리들이 예의상 질문했다.
“……도움이 필요하니?”
“아뇨.”
유키가 단 칼에 잘라냈다. 눈에는 어쩐지 결연한 다짐 같은 게 깃들어 있었다.
“제가 혼자서 해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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