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즐유키] 여름 괴담 - 율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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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4 16:25

선배 방학숙제 했어요?

아뇨?

당당하네요…,

, 도와줘요?


아뇨, 선배 도움 받기 싫음…. 유키의 목소리는 거의 한숨에 섞여 있어 잘 들리지 않았다. 귀찮고 힘든 건 피하고 싶었는데, 숙제가 안 되어 있다는 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도 고등학교 2학년이나 돼서 중요한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랬다. 고등학교라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악마가 계약하자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생각하다가 유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배를 마주치긴 싫었다. 정말, 누가 소원이 있다고 하면 지구 끝에서라도 어느새 듣고 특유의 웃는 얼굴로 나타날 것 같았으니까. 선배가 싫은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 존재 자체가 껄끄러웠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까지 열심히, 온 힘을 다해서 남을 멕이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는 게 유키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시험을 잘 보고 싶다고 하면, 절대점수는 오르는데 나 말고 남들이 다 100점을 받아 재시험을 보게 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마는 희한한 악마의 재능 같은 게 있었다, 그에게는. 이름은 아즐. 새파란 색을 이름으로 옮겨담으면 그런 이름이 될 법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아즐의 존재… 그 자체.


아즐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그냥 어디에나 있을, 흔한 고등학교의 복도였다. 회색 벽과 흰색 타일 깔린 바닥에 색온도 낮은 형광등이 내려앉은 그저 그런 여름이었고, 방학은 끝났다. 떠드는 소리나 누군가의 발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아즐은 그냥 서 있었다. 아즐은 세상의 꽤 많은 것에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관심을 줄 줄 알았으니까, 아무것도 아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몰랐다. 아즐이 기대어 있는 벽은 다른 모든 벽과 마찬가지로 회색이었고, 아즐이 서 있는 시공간은 다른 모든 학생들에게와 비슷하게 여름이 끝난 고등학교의 복도였다. 그냥, 모든 게 지루하다는 표정을 하는 아즐은 평소의 아즐과 같았다. 매번 같은 풍경에 매번 들고오는 내기들은 조금씩 내용이 달라졌지만 형식이 달라진다곤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 바라는 것이 있으면 흔히 아즐을 찾았다. 아무래도 괜찮지, 그러니까 뭔가 해 봐, 하는 요구들에 아즐은 능숙하게 반응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많이들 놓치는 것은 아즐도 학생이라는 것이었다. 학교가 지겹고 학교 밖이 더 필요한.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아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복도도, 복도를 다니는 사람들도 아즐이 이미 아는 것들이라서, 하고 생각할 때쯤 어, 하고 유키가 멈추어섰다.


그러니까, 유키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그녀가 특별히 다르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즐이 처음부터 유키를 본 것은 아니었다. 학년이 다르고 나이도 달랐으며 유키에게는 아무렇게나 의뢰를 맡기는 의외성은 없었다. 유키는 복도를 걷고 있을 뿐이었다. 아즐의 눈에 띄기 전까지는. 유키는 화려하지도, 특별히 아즐이 좋아서 따라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바로 그 점에서 아즐의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회색 복도에 똑같은 교복들이 돌아다녔고 유키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을 따름으로,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는 것인지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딱 그만큼만 고요했다. 녹색 그림자가 창 너머로 떨어진 순간 그림자 속에서 뜬 눈이 어쩌다가 마주쳤을 뿐으로. 눈이 마주쳐서. 그래서.


아즐이 발걸음을 돌렸다.


소원 같은 거 있나요?”


아즐의 목소리도 대수롭잖은 것을 이야기하듯, 딱 그만큼만 흥미로워했다. 아주 가벼웠고 익숙한 무게였으며 유키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선배의 것 같았다. 그런 거 없는데요…, 하고 유키가 중얼거렸다. 나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고 쓰인 듯한 표정을 보면서 아즐이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선배 그 얼굴로 여럿 호렸죠, 하고 말하고 싶은 눈빛으로…, 말을 했다. 유키가.


소원이 있다고 하면 간 빼간다고 하던데.”

제가요? 간을 빼서 어디다 쓸까요.”

안 빼간다는 게 아니잖아요, 빼도 쓸 데가 없다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그 간도 쓸모없을 텐데 소원 알려주는 거 뭐가 무서워요?”


, 열받아. 유키가 이를 사려물었고 아즐은 퍽 즐거워졌다. 보통은, 다들 아즐에게 먼저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물론 조금씩 다른 수를 쓰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그 소원을 이루어놓고 당황하는 것을 보는 게 아즐의 즐거움이기는 했지만 그 소원 자체가 없다는 것은 조금 다른 영역이어서, 아즐의 눈이 스리슬쩍 유키의 명찰을 향했다. 대체로 평범한 것 같았고, 아즐은 그가 잠시간 느낀 기묘함의 정체를 알고 싶어졌다.


원하는 게 없어요? 도와줄 수도 있는데요.”

방학 숙제….”

못 했어요? 대신 해 드릴까요.”

그건 표절이죠.”

안 걸리면 오마쥬예요.”

걸리게 할 거 같아서 싫어요.”

아하, 절 아나 보네요?”

알아요. 유명한 선배잖아요. 소원 핑계로 이거저거…, 사채계약.”

사채. 사채라고요?”


이건 정말 의외인데, 아즐이 눈을 찡그렸다. 사채만큼이나 어이없게 굴러가는 계약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억울한 것도 있었고, 그 사채라고 말하는 입에서 소원을 이야기하게 싶기도 하다는 게, 아즐로서는 특이한 일이었다.


내기할래요?”

싫은데.”

말이 짧네요, 일학년.”

싫어요.”


내기 싫어요. 유키가 주어를 확실히 하며 다시 말했다. 하자, 손해볼 거 없을 거야. 아즐이 자연스러운 얼굴로 웃음을 지었지만, 어째서인지 유키는 그 얼굴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도, 아즐은 생각했다.


몰랐던 소원을 찾아낼 수도 있잖아요.


아즐이 좀더 구체적인 협상안을 내밀었다. 아즐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고, 마치 자신이 그 어떤 일에서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담고 있었다. 방학 숙제 하는 데에 얼마나 걸렸어요? …안 했군요, 네…, 그러면 대충, 방학 숙제 얼마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유키는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대답했다. 일주일. 좋아요, 하고 아즐이 웃었다.


일주일 안에.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이뤄줄게요. 하지만 없다면,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내가 정하는 거죠.”

뭐 이딴 불공정계약이 다 있어요.”

지금 생각이 머릿속을 뚫고 나온 거 같은데요.”

자주 그래요.”


제가 안 하면, 뭔가 다른 거 시킬 거죠? 하고 유키가 말했다. 나는 너의 개수작에 절대 속아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얼굴로. 아즐은 아무튼 그 답에 만족하긴 했다. 재미있다, 그 정도면 딱 적절하게 방학이 끝난 여름의 끝자락을 잡아 던져버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내기가 시작된 첫날, 아즐은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했다. 그는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시선은 늘 유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학년이 다르니 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한정적인 시간 가운데에서도 유키가 눈에 띄는 건 더 한정적이었다. 특별하지 않게, 다를 바 없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걸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배회했다. 그건 다시 말하면 어디에 가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고, 또다시 말하면 어디로 가든 똑같아서 달라질 게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오늘은 뭐 해요?”

밥먹죠.”

메뉴는요.”

그냥 먹죠. 선배 급식표 있어요?”

알려줘요? 소원이라고 하면 알려 주고.”

치사하네요…. 그냥 먹을게요.”

싫어하는 게 나올 수도 있잖아요.”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선배보단 안 해로울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근데 안 해로울 것 같아요.”


정말 생각이란 걸 필터링을 안 하고 다 말하고야 마는군요. 아즐은 기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따박따박 대드는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도 아즐은 지난 생활을 통틀어 최근의 일주일간 자신의 평판에 대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직접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만 모으면 분명히 그랬다. 죄다 유키가 직접 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신빙성도 있었다.


, 시험 잘 보게 해달랬다는 앤 뭐예요?”

유명한데요. 아마 선배 시리즈에서 제일.”

시리즈도 있어요.”

원숭이손 괴담같은 거…, 선배 거의 원숭이손인데.”

그게 기분이 좋은 말이 아니란 건 아는 거죠?”

아는데 그런 걸 어떡해요….”


하고 말한 날엔 유키도 거의 포기한 것처럼 담담했다. 간단한 얘기였다. 시험을 잘 보게 해달래서 그건 나머지 모두를 컨닝을 시켜도 되냐는 얘기냐고 되물었을 뿐인데, 그게 억울했던 누군가가 와전을 했나 보았다. 아즐은 딱히 그 이야기를 맞게 고쳐 줄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고치고 싶어지기는 했었다.


밥 같이 먹을까요.”

, 진 않고요.”

이쯤 되면 누가 선배인지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 저랑 같이 먹든 안 먹든 체하겠다는 얼굴인데.”

소화제 고맙습니다.”

고마워 해요.”


소음에도 질량이 있다면 학교 급식실은 그 어느 곳보다 무거웠을 것인데, 아즐과 유키가 있는 곳은 시끄럽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시끄러워질 수가 없었다. 아즐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그 가운데 실제 일어난 일에 기반한 소문은 많지 않았다. 아즐 앞에서 그 소문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추리면 더 적어졌다. 그런 이유로 아즐은 평화롭게, 유키는 조금 불편하게 밥을 먹기 시작했고, 한동안은 조용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즐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람 구경하는 게 재밌죠, .”


아즐은 정확히 그렇게 말했고, 유키는 그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한두 번 정도는 참은 것 같았다. 그러다 못 참고 그냥 지르기 전까지.


그러니까, 다들 사람 처음 보나 봐요 그러니까 선배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하지, 하고 말하기 전까지 그랬다. 갑작스러운 바른말에 무례한 인파는 금세 물러났지만 유키는 아 또 저질렀네, 하는 표정으로 맹숭맹숭 밥을 퍼서 입에 넣고 있을 뿐이었고, 원숭이로 지칭된 아즐은 구경할 사람도 별로 남지 않게 한산해진 급식실 구석에서 생긋생긋 웃으며 남은 반찬을 젓가락으로 툭툭 칠 만큼의 여유가 생겨났다.


또 어느 날은 방과 후였다. 학교는 이미 조용해졌고, 복도는 어둠에 잠식되고 있었다. 아즐과 유키는 교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고, 붉은 노을이 교실 안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유키는 대체로, 아즐의 관찰에 따르면 하고 싶은 말이 티가 나는 편이었다. 방학숙제 어쩌고때문에 학교에 남아서 어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게 티가 나는 표정으로, 정확히는 딱히 숨기지 않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아즐은 유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소원 없어요, 진짜?”

방학숙제….”

그거 말고 들어줄 수 있는 걸루요.”

그런 거 딱히 없는데요.”

그럼 제가.”

그건 불공정이 아니고 사채계약이잖아요. 어떻게 돌려줄지 알고요.”

원숭이손 괴담이요?”

.”


그러고보니, 하고 아즐이 입을 뗐다. 생각나는 괴담이 있네요.


그리고 결국은 여름이 끝나기 전에 괴담으로 이야기가 이동하고 마는 것이었다. 유키가 안광이 거의 빠져나간 눈으로 멍하니 운동장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 사실 심심하죠.


발단은 그날 낮이었다. 한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어느 날, 한적한 고등학교의 운동장은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저기다 계란 하나 깨면 계란 익겠다, 생각하면서 유키가 머리를 다시 묶는데 반 뒷문이 소란했다. 익숙해진 소란이기는 했다. 일주일째 유키의 반에 오는 선배가 하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 말은 유키가 으, 하는 얼굴로 질색을 하게 만들었다.


귀신 만나러 갈래요?”


그게 문제였다.


아뇨.”

있긴 있다고 생각해요?”

.”


그건 진짜, 헛소리 작작 하고 빨리 나가란 거, 뭐 그런 거였는데.


친구들은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너 귀신 믿어? 그리고 유키는 깨달았다. 선배가 먹잇감으로 월척을 낚았구나….


지는 사람은 소원을 상납하고, 그 소원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게 내기 두 번째였다. 거의 사채이자라고 생각했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아즐이 사채 아닙니다, 라고 말해버렸기 때문에, 유키로서는 항변할 기회를 빼앗겼다. 아무튼 밤의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게 네댓 명은 되었다. 옥상은 안전 문제로 거의 항상 문이 닫혀 있으니 청춘만화에나 나올 법한 한여름 귀신 얘기는 할 것도 못 되었는데도, 고작해야 운동장 구석에 박혀 있는 가건물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다들 일단 모이기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뭐 있겠죠.”

그렇게 믿어요?”

아무 것도 없진 않을 거 아니에요. 폐자재라거나 담배꽁초 같은 건 있겠죠.”

이렇게 치사하게 빠져나갈 건가요?”

담배꽁초 보고 나면 선배 괴담처럼 살 붙어서 퍼져나갈 거 아니에요. 선배도 딱히.”

저요?”


내가 어떤데, 내 얘기가 좀 억울하게 퍼진 감은 있는 것 같아, 맞아, 하고 웃는 얼굴에 대고 그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 어쩐지 들지 않아, 유키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고 그걸로 일단락되는 것 같아 보였다. 본격적인 밤이 되면 조를 나누어, 이인 일조로 괴담투어를 하기로 얘기가 되고 나자 과연 저 선배에 대한 괴소문들이 진짜 억울한 평가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정리가 되는 것 같기는 했다.


밤이 오기 전, 노을은 지고 구름이 장미색으로 시작해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는 것을 감상하고 있을 만큼 낭만적이려면, 적어도 아즐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에 괴담 투어를 할 것 같진 않았다. 모여든 면면이 전부 낯익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기 때문에, 유키는 또 뭔가 얘기가 퍼져나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으로, 방해를 받은 듯이 조금 찡그린 아즐의 얼굴은 낯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그에 대해 알게 된 지 고작 일주일만에 뭐가 낯설다는 걸까, 하고도 생각했다.


폐건물은 말 그대로 더이상 쓰지 않는 창고라서 대단한 걸 기대했다간 더욱 아무런 것도 없을 뿐이었는데. 거기에 진짜 온 멍청이들을 보며 아즐이 혀를 끌끌 찼고 그 멍청이 가운데 하나가 된 유키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기 있잖아요.”

무슨 내기?”

제 소원은 제가 조용히 사는 거거든요.”

뭐 그런 심심한 소원이 다 있죠.”

아니 진짜, 선배랑 엮여서 이러는 거.”

재밌다고요?”

아…, 네…, 뭐…, 네….”

유키는 진짜 언젠가 표정 때문에 말 나올 거예요..”

솔직한 게 낫잖아요.”


아니라곤 안 했지만 그렇다고도 안 했다. 유키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시계가 정각을 가리켰다. 밤 아홉 시, 해는 졌지만 괴담 투어 같은 걸 하기엔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이었다. 아즐이 손바닥을 툭 쳐서 소리를 냈다.


다들 들어가죠. 규칙은 간단해요. 건물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오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게 내기 조건이고, 꼭대기에서 뭘 봤는지 인증하기.”


이건 쉽지, 하면서 들어가는 무리가 선발대였고 후발대 몇 명은 괜히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어서. 그들은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고, 어두운 복도는 어디서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음산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일어나 코를 찔렀고, 바람이 창문 사이를 스치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진짜 싫다고 생각하면서 유키는 조용히 앞을 걸었다. 아즐은 그녀를 따라가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즐은 그 내기를 시작한 자신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건물 안은 이상할 정도로 춥고, 어딘가에서 이상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는 진짜 들렸다. 이상한, 바람 부는 소리가.


저기요.”

.”

이거 가건물이잖아요.”

.”

짓다 만 건물이잖아요.”

.”

근데 왜 외부 소리가 이렇게 잘 들려요.”


, 눈치 빠르네요…, 하고 대답할 줄 알았던 아즐이 그러게요, 라고 대답한 순간 유키는 악 하고 비명을 질러 버렸다.


선배는 생각이란 게 있어요? 선배가 다녀와 보고서 괴담 얘길 한 게 아니었어요? 누구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생각이란 거 있고 전 답사 안 다녀왔지만 다녀온 사람 있다니까요? 유키는 말을 진짜 편하게 하네요…, 이런 성격이었어요.”

제 성격은 안 여쭤봤고요, 이거 진짜 위험하면 어떻게 해요?”

안 위험해요.”

그러니까, 그 이유를!”

잠깐만요.”


이상하지 않나요, 아즐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들의 발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마치 누가 보고 있다는 것처럼 그랬다. 유키가 숨을 흡, 하고 들이마시고 아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거 그냥 위험한 폐건물이니까 조용히, 그냥 다시 내려가면 되잖아요. 아즐이 씩 웃었고 유키는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다 왔어요, 하고 아즐이 말했다. 그들은 마침내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파란 창고 끝엔 낡은 문 하나가 있었는데,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흘러나왔다. 아즐은 계단을 오르느라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문 너머로 이상한 형체가 보였다. 희미한 달빛 아래, 흰색의 흐릿한 형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하고 유키가 소리를 냈다. 진짜였네요…, 아즐은 그 뒤에 숨은 말이 고운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선배, 방학숙제요, 그걸로 할게요.”

뭐 말이에요?”

내기요. 그러니까 웃지 마세요. 제가 인생 마지막 보는 게 선배 웃는 얼굴이면 좀 아닌 것 같아요.”

상처를 이렇게 주나요….”

저도 제가 보고 싶은 얼굴 정도는 고를 수 있잖아요!”


소리는 거의 요오옥처럼 났다. 문을 열고 그곳에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적어도 5층짜리 건물이었다. 가건물을 그따위로 쌓아 올린 학교측에 제일 먼저 욕을 해야 했겠지만, 그리고 아즐에게도 한 차례 쓴소리를 퍼부어야 할 것 같았지만 아즐의 체력으로는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해 얼굴이 창백했다. 체력이 된다 해도 이렇게 계단을 반복해 오르는 식의 막나가는 노동에 익숙한 건 아닐 거라고 유키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난간도 뭣도 없이 열린 문 너머로 허공만 펼쳐져 있지.


아즐이 그곳에 거의 떨어질 듯이 서 있다는 게 유키에게는 조금 더 문제였다.


선배, 만약에 이게 진짜 괴담이고, 저 하얀 게 문에 붙은 비닐이 아니라 귀신이면요, 선배 어떻게 할 거예요?”

소원을 빌어야죠. 그런 괴담이니까.”

첫째론 여기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빌 거예요, 저는.”

그리고요?”

균형 좀 잡아요! 그 담엔, 여기서 귀신 만난 거 모두가 잊어버리라고 빌 거예요!”


아즐에게 손을 뻗느라 체중을 거의 몸에 실은 채로, 이를 악물고 유키가 말했다. 이딴 데를 대체 왜 오자고 했는데요! 하는 소리는 안 들리는 줄 알았다가 생각 외로 쩌렁쩌렁 울려서 들어 버렸고. 아즐은 학생 구두 뒤축이 거의 문지방 밖의 허공을 밟고 있는 채로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의식했다. 성악해도 되겠어요, 유키는…, 선배는 지금 이게 웃겨요?


허공에 매달린 기숙사 회장, 그리고 그 생명줄을 잡고 있는 일학년 여학생, 이게 웃기냐고. 유키는 거의 욕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들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요….”

?”

여기 올라오면 거울이 하나 있다고 들었어요. 헐떡거리면서 올라왔다가 거울 보고 귀신인 줄 알고 놀라서 내려간다, 그렇게 들었거든요. 착오였네요. 귀신 안 무서워 해요?”

! 죽은 게 절 해치면 뭐 어쩔 건데요,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빨리 안 올라와요? 무거워서 놓칠 거 같은데 제 탓은 아니면 좋겠거든요!”


아즐이 으하하 웃으며 유키의 손목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휘청한 몸을 가누었을 때엔 아즐의 두 발이 안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씨근거리면서 아즐을 노려보는 유키의 두 눈을 보면서 아즐이 뜻모를 감탄을 했다. 여기서 나가면 얘기 업데이트해야겠네요. 올라가면 여자애가 있는데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게 엄청…, 유키가 악, 하면서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을 끊기 전까진, 아즐의 말은 어쨌거나 청산유수였다.


엄청 뭐요, 예쁘다고요?”

무섭다구요.”

다시 매달리실래요?”

이미 늦었어요.”


다 내 계산 안에 있었는데 이게 마지막에 망할 줄은 몰랐지, 그래서, 유키의 소원은 내가 정하는 걸로요? 아즐이 픽 웃으며 말을 던졌다. 유키가 이를 갈듯이 말을 씹어뱉었다. , 소원은요, 하고.


아즐이 다정한 얼굴을 하고 웃어보였다. 유키의 소원은?

선배가 건강하고, 무사하고, 평안하고, 아무튼 안전하고, 아무튼 잘 지내서! 저랑 다시 안 보는 거예요.


유키는 비장했고, 아즐은 이번엔 진짜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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