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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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13:24

“부하야…… 삐졌어?”

“안 삐졌어.”

“그럼 부하. 나 오늘도 혼자 공부한다?”

“그러든가.”


유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허락을 받아낸 그림이 눈치 없이 활짝 웃으며 방방 뛰었다. 삐진 게 아니라 화난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다. 플로이드와 대화한 이후로 심적 피로감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하게 웃는 그림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나 몰래 계약 같은 걸 해놓고도 이렇게 해맑게 굴 수 있는 건데?’


유키에게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도, 계약 사항을 수행하지 못 했을 때 어떻게 될지도 전혀 두렵지 않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단순한 그림의 평소 성격을 생각해보면 답이 빤히 나왔다.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림의 단순한 면모를 귀엽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위험한 짓은 말하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서운하고 짜증스러웠다.


그런 유키의 마음을 조금도 모른 채, 그림은 즐거운 얼굴로 홈룸이 끝난 교실을 빠져나갔다. 유키는 한숨 쉬며 홀로 교실을 빠져나가 메인 스트리트를 걸었다. 그림은 아마도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갔을 테다. 평소였더라면 유키도 도서관에 공부하러 갔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유키는 메인 스트리트를 걸어 거울사로 향했다. 유키의 대답에 즐겁게 웃던 플로이드를 생각하면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하는 짓이고 정신연령이고 초등학생 수준인 애를 꼬셔서 뭘 시킨 거야!’


플로이드를 만나면 아주 혼쭐을 내 줄 테다. 힘도 없고 마법도 못 쓰는 유키가 플로이드를 어떻게 혼내줄지 방법은 생각하지도 않고 유키는 쿵쿵대며 걸었다.


“이런, 바닥 무너지겠습니다.”


누군가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유키가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홱 고개를 돌렸다. 제법 키가 큰 은회색 머리칼의 옥타비넬 학생이 서 있었다. 안경을 써서 지적으로 보이는 얼굴이 도저히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인상이었다. 유키가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삼키고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좀 세게 밟는다고 안 무너져요.”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군요. 농담입니다.”

“여자애한테 몸무게는 중요하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그 기분 잘 알죠.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그 옥타비넬 학생은 기분도 상하지 않는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차라리 화를 내면 속내를 알기 편하겠는데, 그저 웃기만 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안하지도 않나, 저 사람은?’


괜히 자신이 예민하게 느껴진 유키는 민망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옥타비넬 학생이 질문했다.


“그래서, 다른 학년까지 소문이 자자한 고물 기숙사의 감독생이 거울사에 무슨 일입니까?”

“어머, 저도 다른 기숙사에 친구가 있어요.”

“다른 기숙사에 놀러가는 거라면 그 친구와 함께 오셨겠죠.”


정곡을 찌르는 대답이었다. 유키의 친구가 있는 기숙사인 하츠라뷸이나 폼피오레나 규칙이 강해서 다른 기숙사의 친구를 초대하려면 약식으로라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어디로 가려는지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이 사람에게 다 알려주게 생겼다. 유키는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구랑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선배한테 초대를 받았어요.”

“선배분들과도 친분이 있다니, 제가 화이트 씨를 과소평가했군요.”

“그럼요. 옥타비넬의 선배에게 초대를 받았답니다. 모스트로 라운지로 오라던데요.”


옥타비넬 학생이 픽 웃었다. 어쩐지 비웃음이 섞여있는 듯, 보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유키가 눈을 세모꼴로 뜨고 옥타비넬 학생을 노려보았다. 그가 눈을 부드럽게 접어 웃었다.


“모스트로 라운지라. 좋은 공간이죠. 공부하기에도 좋고, 고백하기에도 좋고.”

“플로이드 선배가 저한테 고백하실 거 같진 않은데요.”

“플로이드에게 초대를 받았습니까?”

“초대라면 초대죠.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으니까요.”


유키가 그런 말을 남기고 옥타비넬 기숙사로 향하는 거울로 들어갔다. 그 옥타비넬 학생도 마침 기숙사로 가는 길이었는지 유키를 뒤따라 옥타비넬로 향했다. 처음 와 보는 옥타비넬 기숙사는 바다 아래에 있는 듯, 예상했던 하늘과 땅이 있는 풍경이 아닌 바다 아래의 풍경이 펼쳐졌다. 통유리 바깥으로 색색깔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유키는 이곳이 적진의 한가운데라는 것도 잊고 감탄했다.


“와아…….”

“옥타비넬에는 처음 와 보십니까?”


돌아보면 아까 전 그 옥타비넬 학생이 서 있다.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모스트로 라운지에는, 가 보신 적 있나요?”

“아뇨. 이제 가 봐야죠.”

“저도 모스트로 라운지로 향하는 길인데, 레이디를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에스코트니 뭐니 하며 멋지게 말했지만 그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다만 살짝 웃으며 앞서 걸어갈 뿐이었다. 


‘뭐야, 이 사람?’


유키는 앞서 가는 뒷모습을 보며 황급히 그를 따라갔다. 그는 걷는 속도를 배려해주지 않았다. 그와 발맞추기 위해 유키는 뛰듯이 걸어야 했다.


“플로이드가 화이트 씨를 초대하다니, 의외군요.”

“그런가요? 저는 별로…….”

“플로이드는 좋은 사람이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친구라서 말입니다.”


유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 사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꼭 플로이드 리치가 유키 화이트를 좋아한다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게다가 내용도 꼭, 플로이드는 변덕이 심하니 너 같은 건 언제나 차 버릴 수 있다고 주의를 주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연애로 가득 찬 사람인가. 유키는 괜히 삐딱한 생각을 하며 말했다.


“이 학교에서 플로이드 선배가 부르는데 안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아하, 별로 당신의 의지로 초대를 수락한 건 아니라는 뜻이군요.”

“네, 뭐……. 그렇게 보신다면 그렇게 보셔도 좋고요.”


남자가 다시 웃었다. 입술 아래에 점이 있구나. 남자를 흘긋 보다가 괜한 사실을 깨달은 유키는 인상을 찡그렸다.


“플로이드가 왜 당신을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압니까?”

“다들 새로운 참고서를 가지고 있던데, 플로이드 선배가 그에 대해 아시는 눈치더라고요. 그림도 엮여있는 것 같기에 조사하러 왔어요.”

“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한 거군요. 플로이드에게는 선물을 줘야겠습니다.”

“‘고객’이요?”


질문에 마법으로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남자가 유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옥타비넬의 기숙사복은 깔끔한 동시에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만면에 홀릴 것 같은 웃음을 지은 남자가 말했다.


“족보에 관한 것이라면 제가 책임자이니, 지배인실로 모시죠.”


어느새 둘은 모스트로 라운지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남자가 문을 열자 밝은 빛이 남자의 뒤에서 쏟아졌다. 그는 유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아즐 아셴그로토. 모스트로 라운지의 지배인이자, 옥타비넬 기숙사의 기숙사장입니다.”

“……그림도 아셴그로토 선배와 계약을 한 건가요?”

“다른 사람의 계약 사항은 비밀입니다. 물론,”


아즐이 눈을 접어 웃었다.


“‘계약’을 하면 달라질 수도 있고요.”


‘덫이었구나.’


유키는 순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는 도망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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