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유키] 거짓말쟁이 사자
이제 2왕자께서도 혼인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형님이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니고, 왕위 계승자도 이미 있지 않나?
남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안정을 찾기 마련입니다. 레오나 님께서도 이제 가족을 만드셔야지요.
잘도 말하는군. 내가 안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모양이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 만사에 의욕이 없어 보이십니다.
결혼을 한다 하여 내게 의욕이 생기진 않을 것 같은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게다가, 더 늦으면 레오나님께 구혼하는 여성들이 포기하고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돌아서라고 해.
그러시다면, 맞선 없이 결혼식부터 진행해도 되겠지요?
어이. 누구 마음대로?
혹, 마음에 두신 상대라도 있으십니까?
…….
맙소사. 있으신 겁니까?
키파지. 나를 뭘로 보는진 모르겠지만, 나도 연애 정도는 하고 산다.
아니, 전혀 언질이 없으시기에……! 누구입니까?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후배다.
……실례지만,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는 남학교가 아닌지요?
몇 년 전에 여학생이 하나 입학한 일이 있었지.
유키 화이트 씨 말씀이군요. 캐치 • 더 • 테일 때 뵌 기억이 있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의 앳된 소녀였지요. 벌써 10년 전이군요.
여전히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는군. 그래. 맞다.
확실히…….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질문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해 봐.
설마 그 때부터…….
겠냐. 그 땐 어린애였다고.
휴우…….
정말이지, 불경하다. 키파지.
사죄드립니다. 레오나 님. 그나저나 화이트 님은 10년 전에 1학년이셨으니, 이제 스물여섯이 되시겠군요. 딱 결혼 적령기입니다.
…스물다섯 살이다.
예?
학교에 1년 일찍 입학했다더군.
……예. 알겠습니다. 어떤 분이신지요?
우리 솔직해지자고, 키파지. 유키의 신상이 궁금한 거겠지?
왕자님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하겠군요. 이 늙은이를 그리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
무슨 소린지. 자네가 나를 괴롭히는 거겠지.
크흠. 10년 전의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밝고 다정하신 분이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밝고 다정하다…라. 틀린 말은 아니지. 좋은 녀석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분명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입학하기 전에도 좋은 교육을 받았겠지.
그 부분 말인데…
아아, 15세 이전의 흔적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우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진 것에 대해 말이지.
……예.
당연한 일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그게 무슨…….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를 대표하는 마법 물품은, 공간을 연결하는 어둠의 거울이다. 이것만으로도 짐작가는 것이 있겠지?
다른 행성에서 오기라도 했다, 이 말씀이십니까? 농담이 심하십니다. 레오나 님. 차라리 장미의 나라 전 대통령인 화이트 씨의 혼외자라는 설이 더 신빙성 있겠군요.
후견인인 크로울리와는 혈연 관계가 없다는 것까진 파악한 모양이군? 아쉽게도 유키 화이트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레오나 님.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그녀는 이 세계의 어디에도 연고가 없다. 다른 행성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불려왔다는 뜻이지.
…….
아아, 원로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리라는 건 알아.
…그렇다고, 평생 그 분과 사실혼 관계로 사실 수 없으시다는 것. 레오나 님께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차라리 후처 정도라면…….
형님께서도 후궁을 들이지 않았는데, 내가 두 번째 아내를? 세상에, 카파지. 이젠 진짜 은퇴할 때가 된 모양이군.
그렇지만,
그만. 그 자존심에 후처로 들어올 리가 없다. 차라리 나를 버리고 말지.
레오나 님…….
게다가, 혼인하기에 좋은 핑곗거리도 생각났고 말이야.
……?
아아. 2왕자의 첫째를 혼외자로 만들 수는 없지 않나?
……설마.
아아, 그래. 그 설마다.
맙소사. 팔레나 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면……!
형님이야 뭐, 내가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구나. 하시겠지.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시끄러워. 이미 생긴 애를 어떻게 지우나? 그렇게 됐으니 알아서 처리해.
……알았습니다. 일단, 입을 잘 맞춰보지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맙소사…….
*
그래, 유키 화이트. 오늘 내가 널 왜 불렀는지는 알겠나?
…솔직히 말씀드려도 돼요?
그래.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럴 줄 알고 있었다. 그래… 말하자면, 빚을 받으러 온 거겠군.
……빚, 이요?
그래. 빚.
그, 무슨…?
내 이미지를 망친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
……그거, 5년이나 지나지 않았던가요?
알 게 뭐야. 문제는, 그것 때문에 내 혼사가 막혔다는 거지.
에…?
나와의 혼인은 왕실에 줄을 댈 좋은 기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결혼 적령기의 왕자를 가만히 둘 리 없다는 것 또한.
당연히 알죠. 그, 결혼하시게 되셨나요?
아아, 그래.
상대는 어떤 분이신가요?
그게 문제라서 말이야.
에?
바보 같은 얼굴 하기는. 내게 구혼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5년 전의 그 파파라치 샷 때문에.
그, 그런…! 그럴 리가 없잖아요?
구혼이 뚝 끊긴 게 누구 덕분인데 말이 많군.
……설마, 진짜……?
그래. 덕분에 무척 곤란하게 됐다고? 원로는 미혼인 왕자를 혼인시키려 안달인데, 구혼자가 없다니 말이다. 내 체면이 말이 아니야.
이걸,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역시 눈치가 빠르군. 마음에 들어.
처음부터 빚을 받으러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어디에 나가서 해명이라도…….
아아, 해명은 필요 없어.
예?
이제 와서 해명해 봤자다. 이미 내 이미지는 바닥이거든.
그럼, 어떻게…
진짜 모르겠나?
감이 안 잡히는데요.
쳇, 눈치없는 척하기는.
제가 레오나 씨와 결혼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왜 못하지?
…에, 저, 그… 레오나 씨는 왕실 사람이죠?
내가 2왕자라는 걸 다행히도 잊진 않았나 보군.
출신 성분이라거나, 그런 것 따지지 않나요?
따지겠지.
저는, 그러니까 이곳에 기반이 없는데요.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먼 2왕자다. 기반이 없는 편이 좋지.
그렇지만, 그것도 평범한 사람일 때나 적용되는 것… 아닌가요?
너는 특별하다?
그게 아니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귀한 왕자님을 허락할 리가 없잖아요.
별 걸 다 걱정하는군. 그건 내가 노력할 테니 괜찮아.
…저는.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
어이. 네가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 온 지 10년이 흘렀다. 그 세계의 시간이 이곳과 같이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10년이면 네 세계도 네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을걸.
그렇지만,
그리고 네가 돌아간다고 해서, 네가 사랑하던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
돌아가는 과정에 안전은 보장되어 있나? 아니, 애초에 돌아가는 방법을 알기는 하나?
레오나 선배.
못마땅한 표정이군. 그래. 더 해봐.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맞고,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럼 왜지?
제일 중요한 게 남았잖아요! 레오나 씨는 저로 괜찮으세요? 다른 선택지가 분명히 있을 텐데요!
괜찮으니 책임지라 하는 것 아니겠나?
……에.
또.
그러니까, 레오나 씨. 저를…… 그… 좋아하세요?
굳이 말하게 하지 마.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저는.
꼭 들어야 한다는 거지.
예.
그래? 나는 무척이나 섬세한 남자라, 둘만 있는 곳이 아니면 못 말하겠는데.
둘만 있는 곳, 이라면.
그래…… 내 집에라도 오지 않겠어? 결혼 허락을 위해 네가 해줄 일도 있고 말이지.
할 일이라니, 그건 또 뭔가요?
글쎄. 와보면 알겠지.
*
그래서 아이 만들기를 노력한다는 이야기.
나중에 키파지와 원로들이 아이의 개월수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레오나를 노려봤으면 좋겠다. 왕자님은 거짓말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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