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말레유키] 타향의 하늘에도 별은 여전히 빛난다

<span class="sv_member">린더</span>
린더 @frauroteschuhe
2025-11-25 06:21

공기가 꽤 차가워졌네…….”

 

뭐라도 두르고 나올 걸 그랬나. 유키가 그리 중얼거리며 옴보로 기숙사의 정원을 걸었다. 볼 것 없는 정원이지만 나름 정리를 한 덕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짧게 잘린 잔디와 쏟아질 듯한 별들. 이 정도면 나름 정취 있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이 밤의 정취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표현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유키가 작게 키득거렸다.

 

? 거기에 있는 넌…… 누구지?”

……?”

 

키가 크고 뿔이 달린 남자가 옴보로 기숙사의 정원을 걷다 유키에게 말을 걸었다. 모두가 제 기숙사로 돌아갔을 시간이니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틀렸다.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뿔이 달린 남자라니. 이 사람도 동물 귀가 달린 수인 비슷한 걸까. 자세히 보니 귀가 뾰족한 게, 정통 판타지의 엘프 같기도 했다.

 

이건…… 놀랍군. , 인간인가.”

아무래도 고스트는 아니네요. 아직 죽진 않았거든요.”

, 여기에 살고 있는 건가?”

아쉽지만 그렇게 됐어요.”

 

유키가 농담조로 발랄하게 대답했다. 저 연두색 완장은 분명 디아솜니아 기숙사라고 했었지. 이런 밤에 기숙사를 빠져나와 학교에 어슬렁거리는 것을 기숙사장에게 들키면 혼이 날 텐데. 그건 별로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 죽지 않은 게 아쉽다는 건가?”

고스트이길 기대한 것 아니었어요?”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 건물은 오랫도록 폐허였기에…… 혼자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나만의 장소로써, 제법 마음에 들어했었는데 말이지.”

제법 황량한 걸 좋아하는 취향이시네요. 정원이 정돈된 것도 마음에 안 드시겠어요. 그럼.”

 

유키가 아쉬운 눈길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폐가에도 오는 사람이 있구나. 폐허라거나, 버려진 건물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라면 식물원 관리인을 닦달해 정돈한 정원이나 수리한 유리창 따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다. 최악의 경우라면 여기서 나와 그림을 쫓아내려 할지도. 그럼 어떡하지?

 

유키의 걱정을 읽은 듯, 남자가 천천히 대답했다.

 

이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어느 것이 더 낫다는 느낌은 없다.”

다행이네요. , 저는 유키 화이트라고 해요. 이 기숙사의 감독생이구요. 뿔 달린 신사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누구냐니…… 나를 모르는 건가? 정말?”

아무래도 견문이 짧아서요.”

 

사실은 견문이 짧은 게 아니라 이세계에서 온 거지만, 오늘 처음 보는 남자에게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학원장이 이세계 출신임을 숨기라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유키가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내 이름을 알려주었으니 당신도 이름을 알려달라는 뜻이었다.

 

흐음. 그런가……. 이건 정말, 드문 일이로군.”

. 말하시는 걸로 봐선 이 학교의 선배 같아 보이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후배에게 이름을 알려주시지 않겠어요?”

말하지 않는 것이 너를 위한 일일 것이다. 알아버리면 피부에 서리가 내린 것처럼 몸이 차가워질 테지.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 해도 그 이름 정도는 알 테니까.”

진짜 모를 텐데…….”

 

아무래도 이 남자, 이 세계의 유명인 중 하나긴 한 모양이다.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나쁜 쪽의 유명인일 테고. 그렇지만 유키는 중얼거리며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어차피 학원장이 돌아갈 방법을 알아내면 떠날 곳이다. 눈 앞의 남자가 어떤 사람이든 그게 중요할까.

 

원하는 대로 부르도록 해. 언젠가는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이상한 별명 같은 걸 붙일지도 모르는데, 정말 괜찮으세요?”

이미 허락한 것을 무르란 말인가?”

우으음…… 그럼 열심히 고민해서, 다음에 만나면 그 이름으로 불러드릴게요.”

그래, 그래.”

 

남자는 대충 대화를 마무리짓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정경도 그의 마음에는 큰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듯했다. 유키가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기사도 문학이었다면 삼십 페이지에 걸쳐 그 얼굴 생김을 묘사했을 법한 남자였다. 서늘한 미모였으나 유키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아주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쉽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곳이 더는 폐허가 아니라는 뜻이니.”

쫓아내실 건가요?”

그럴 리가. 다음 밤 산책용 폐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럼, 이만.”

 

말과 함께 남자는 사라졌다. 유키는 눈을 깜박이며 남자가 있었던 장소를 쳐다보았다. 이것도 마법인 걸까. 정말 신기한 세상이야……. 그리 생각하며 유키는 곧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타향의 하늘에도 별은 지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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