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역하렘] 점심시간은 떠들썩하게
“유키. 달리는 거, 좋아하나?”
잭이 말을 꺼낸 건 제법 갑작스럽다고 해도 좋을 타이밍이었다. 뜬금없는 소리에 에이스와 듀스가 잭 쪽을 쳐다보았다. 같은 식탁에 앉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잭이 멋쩍은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니, 체육 시간이 겹칠 때마다 항상 달리고 있길래.”
“아, 난 또 뭐라고.”
에이스가 픽 웃었다. 듀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의아한 빛을 띠고 있던 유키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유키가 잭을 놀리듯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거, 육상부 영입 제안이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잭이 손사래를 쳤다. 에펠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같은 운동부라면 매지컬 시프트 쪽이 멋있지 않아?”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잭이나 유키가 아닌, 이 식탁에 앉은 또 다른 육상부인 듀스에게서 튀어나왔다.
“뭐 임마?”
“그렇잖아? 육상은 조금 수수한 면이 있지 않나? 매지컬 시프트처럼 화려한 맛은 없다, 고나 할까.”
에펠이 듀스의 성질을 살살 긁었다. 점심으로 골라 온 멘치카츠를 우물거리던 에이스가 포크로 에펠 쪽을 삿대질했다.
“헤에, 그렇게 따지면 마지프트보다는 농구지. 너 플로이드 선배가 덩크슛하는 거 봤냐? 그거 가까이서 보면 박력 장난 아닌데.”
“에이스 너, 레오나 씨의 마지프트를 봤으면서도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잭 너 이 자식. 방금은 육상부의 좋은 점을 말할 타이밍이었잖아!”
“그런 타이밍 같은 게 어딨냐, 듀스.”
에이스가 듀스를 놀려댔다. 듀스가 인상을 썼다. 매번 에이스에게 놀림 받는 게 억울한 모양이었다. 식탁 앞에서 하츠라뷸의 바보 콤비가 싸워대는 것은 익숙하지만 달갑지는 않은 일이었다. 유키가 에이스에게 눈을 흘겼다.
“맞아. 그런 타이밍이 어디 있냐? 정말 바보라고, 듀스는~.”
“그림,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흥. 역시 부 활동은 미식 연구회가 제일이라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바보처럼 뛰어다니거나 하는 일도 없다고?”
“아하하, 그림이 빗자루 타기를 잘 못해서 그런 건 아니고?”
“뭐라고?! 에펠 이 자식. 마카롱 같은 거나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데!”
합심해 그림을 놀려대는 에이스와 에펠을 보다, 유키가 한마디 거들었다.
“뭐, 그림의 말도 틀린 건 아니지. 부 활동 예산 덕에 재정에도 도움이 되고…….”
식탁 앞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옴보로 기숙사의 재정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한 달 7만 마들 안에서 식비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해결해야 한다. 제 말에 식탁 위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을 깨달은 유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육상부는 못 들어가겠다. 체육 시간에 뛰는 건, 달리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서.”
“그렇다면 왜 계속 달리는 거지?”
“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달리는 게 나으니까?”
유키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유키의 웃음에서 잭은 작은 체념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유키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니까 비행술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다른 학생들은 비행술 연습에 전념하기에 다른 사람과 할 수 있는 종목은 탈락, 크리켓 같은 구기 종목의 연습은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탈락, 할 수 있는 항목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면 결국 달리기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도 한 시간 내내 둥근 트랙을 달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키의 성실함을 칭찬하려던 잭은 어느새 등장한 오르토와 세벡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유키 화이트 씨. 매 수업 시간마다 그렇게 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아이, 오르토. 너무 띄워주지 않아도 돼. 운동도 되고.”
“흥, 이번만큼은 저 녀석의 말이 맞다. 오르토. 당연한 거지. 도련님의 친우라고 자처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유키가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고 화제를 돌려주려던 에이스가 세벡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색하게 웃던 유키가 세벡을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친구가 되는 데에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말레우스 씨는 그렇다 쳐도, 혹시 세벡의 친구가 되려면 자격증 같은 거 필요해?”
“흥, 비아냥대지 마라. 인간! 도련님의 고귀함을 따라가려면 넌 역시 아직 한참 멀었다!”
“하아, 역시 세벡 지그볼트 씨. 매번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그렇게 선해해줄 것 없어, 오르토. 매번 주변에서 받아주니까 저러는 거라고.”
“뭐?!”
에이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에이스의 말에 세벡이 더 커진 목소리로 외쳤다. 주위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카림과 함께 점심을 먹던 실버와, 말레우스와 릴리아의 시선까지 모이자 세벡이 이를 갈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오르토도 키득거리며 세벡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세벡도 운동부였지?”
“맞다. 승마부에서 단련하고 있지. 근데, 그건 왜?”
“아, 각자 자기 부활동을 자랑하고 있었거든.”
“하! 유치하긴. 당연히 승마부가 제일인데도.”
“뭐?”
한 마디에 다시 모두의 시선이 세벡에게로 꽂혔다. 세벡은 시선을 무시한 채 골라온 함박 스테이크를 썰었다. 잘못 말했나……. 유키가 그리 생각하며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승마라, 말이랑 호흡을 잘 맞추면 멋지긴 하지. 그래도 다른 부활동도 똑같이 멋있거든? 미식 연구회도 말이지, 놀고만 있지는 않는다고.”
“오랜만에 맞는 말 한다고, 유키! 미식 연구회의 멋진 점을 빨리 이 바보들에게 말해줘!”
“미식 연구회의 멋진 점…… 역시 부 활동에 배정된 예산을 식비에…… 아무것도 아니야.”
유키가 침울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미식 연구회 부 활동 예산은 한 달에 1만 마들을 넘지 않았다.
“그런 것 말고! 더 멋진 점 있지 않냐구!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는다거나!”
“너네 부 활동 예산으로 ‘잔뜩’ 먹을 수는 있어?”
“아, 좋은 점 하나 있다.”
“하나만 있는 거야?”
에펠이 장난스럽게 질문했다. 유키가 샐러드 안의 연어를 포크로 찍으며 말했다.
“그림이 마스터 셰프 학점 따는 데에 도움 될 거 같아.”
“……겨우 그거?”
“마스터 셰프는 어차피 한 번밖에 못 듣지 않나? 학점 시수도 높지 않고.”
맥이 탁 풀린 표정으로 에이스가 질문했다. 제 몫의 챱 스테이크를 씹던 잭은 조금 더 실질적인 질문을 했다. 옆에서 듀스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확실히 그림의 성적에 도움이 된다면…….”
“뭐라고?! 듀스, 너 어제 나랑 크루웰에게 나머지 수업 들었으면서!”
“그, 그건 지난 주에 플라밍고 돌보기 당번을 하느라 예습을 못 해서!”
“뭐야, 듀스. 너 부활동 며칠 빠졌다 싶었더니 보충 수업 들었냐?”
“조용해, 잭! 로즈하트 기숙사장이 듣겠어!”
듀스가 기겁해 목소리를 낮춰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 기숙사장이 들을까 걱정하는 것이, 아무래도 기초 학력 보충 수업 들은 사실을 아직 리들에게 보고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이스가 기겁하며 질문했다.
“너, 그거 아직 리들 기숙사장한테 보고 안 한 거야?”
“애초에 보충 수업을 듣는 것부터가 네 성실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나?”
제 점심을 먹던 세벡이 한 마디 했다.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세벡이야 열심히 하면 뭐든 이뤄지는 삶을 살아왔으니 당연히 모를 테지만…….
“세벡, 저 녀석은 말야…… 성실한 것만이 유일한 장점인 바보라고.”
“에이스 너 이자식?!”
듀스가 식탁을 탕 치며 일어섰다. 다시금 대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모두의 이목이 이쪽으로 쏠렸다. 리들의 이목 또한 마찬가지였다. 리들이 이쪽을 주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에이스가 또다시 듀스를 장난스럽게 놀렸다.
“나 식 한 줄을 그렇게 못 외우는 사람 처음 봤다고? 자기 전까지 마법 물리학 책 뒤지는 거 보니까 근성이 대단하긴 하던데…….”
“이거, 칭찬이냐 놀리는 거냐……?”
“너는 이게 칭찬 같나?”
“성실함은 미덕이지.”
잭과 세벡이 한 마디씩 했다. 듀스가 짜증을 내려다가 한숨이나 내쉬었다. 지금 에이스와 주먹다짐을 하며 에이스를 응징해 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이스는 듀스를 더 긁어보기로 한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오르토가 맞은 편에서 리들이 일어서서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유키에게 눈짓했다. 싸움이 격화되기 전에 말려 달라는 뜻이었다. 유키가 오르토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식탁 아래로 에이스의 팔뚝을 꼬집었다.
“아! 아프잖아, 유키! 도대체 뭔데—… 헙.”
유키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저 쪽을 보라는 뜻이었다. 눈치 빠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캐치한 에이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리들을 발견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너희 혹시, 또 싸우는 거니?”
“아뇨, 기숙사장. 저희 오늘도 사이 좋은뎁쇼.”
“네. 뭐. 이 정도는 친구끼리의 가벼운 장난…….”
그러니? 하고 리들이 넘어가려던 순간, 세벡의 중얼거림이 리들의 귀를 스쳤다.
“요새는 멱살잡이 직전의 분위기도 가벼운 장난으로 치는 모양이군? 역시 인간들이란…….”
“에이스, 듀스.”
“네! 기숙사장.”
“오늘 수업 끝나고 5시까지 기숙사장 집무실로. 상황은 그 때 자세히 듣겠어.”
잘 빠져나가려던 에이스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으에에에엑…….”
“대답은?”
“예! 기숙사장!”
듀스가 소리쳤다. 리들이 뒤를 돌아 다시 점심을 먹으러 돌아가려고 뒤를 돌자, 에이스가 세벡에게 삿대질을 하며 짜증을 냈다. 세벡이 소리를 질러서 다시 대식당이 소란스러워졌고……
“Off with your Head!”
결국에는 제 앞에서 엉망진창으로 싸운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리들의 유니크 마법이 직격했다. 유키가 생각했다. 아아,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글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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