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에스] 사냥꾼의 딸은 사냥꾼으로 자라나는가
이름은 S라고 했다.
알파벳 한 글자가 맞냐고 물어보면 지겨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심지어 자음이므로 누구라도 가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밖에 없는 이름을 그 여자는 담담한 얼굴로 가명도, 이니셜도 아닌 본명이라고 했다. 빤히 보이는 거짓을 태연하게 입에 담다 보니 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이름이나 출신지와 같은 정보는 더더욱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는 어느 날 땅에서 솟아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녀가 이세계에서 왔다고 추측하곤 했다. ‘위시 웰 스쿨’의 마법 도구 ‘마르는 우물’은 가끔 다른 세계와 이 세계를 잇기도 한다. 에스 또한 ‘자신은 물리법칙조차 다른 세계에서 왔다.’라고 주장했으므로,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나 출신지 따위의 과거의 정보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으니 믿는 것으로 그 신뢰를 살 수 있다면 믿는 것이 나았다. 다만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입에서 뱉는 여자이기에, 에스의 다른 말들까지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그 주변 사람들은 그리 여겼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를 여자. 제 ‘본래’ 나이는 스물여섯이라고 주장하던 여자.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에 선 그 여자는 확실히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이함은 오로지 흥미 요소에 불과할진대…….
어른스러운 글씨가 빼곡히 채워진 편지지를 내려다보던 루크 헌트는, 문득 가면 아래의 시커먼 눈동자를 떠올렸다. 지쳐 있던 그 눈. 그 누구도 무엇도 바라지 않으니 오로지 고요를 원한다고 말하던, 가로등의 빛을 반사하는 각막 아래의 심연을.
로로 프람이 일으킨 ‘홍련의 꽃’ 사건의 다음 날, 노블 벨 칼리지에서는 사건 해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준비되었던 가면무도회가 열렸다. 모두가 즐거운 듯 서로를 알아가며 노래하고 춤췄다. 그러나 이러한 자리가 천성에 맞지 않는 사람도, 늘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루크 헌트는 회장 밖을 산책하다 그를 발견했다. 후원 가로등 아래 벤치에 앉은 여자. 그는 권태로운 시선으로 회장의 소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여자가 위시 웰 스쿨의 학생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위시 웰 스쿨 측 요청에 의해 그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타인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돌아갔겠지만, 루크는 길 위에서 머뭇거렸다. 어제의 소동으로 지쳤기에 회장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은 데다, 으슥한 곳에는 이미 연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그는 고민하며 여자가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던 여자는, 문득 고개를 돌린 것이다. 정확히 루크가 있는 방향으로.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시선에 심장이 꿰뚫렸다. 그는 정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 어찌 대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루크는 알 수 있었다. 전조가 있었어도 대비할 수 없었을 테다. 여자는 그 먼 거리에서 정확히 그의 눈을 쏘아본 것이다. 귓가 혈관에서 피가 세차게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총에 겨눠진 사냥감이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아, 그녀는 저와 동류였다! 상대를 관찰하고, 끝까지 몰아붙여 손에 쥐고 마는 사냥꾼! 심장이 들끓고 있었다. 당장 말을 걸고 싶었다. 저 여자를 사냥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는 준엄한 목소리로 그에게 명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말아요.”
루크 헌트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는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루크는 제가 두었을지도 모르는 패착을 떠올렸다. 인기척도 없었으며 시선도 엷었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 있기에 자신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다.
“이런, 미안해. 마드무아젤. 놀라게 했구나.”
“전혀 놀라지 않았으니 오해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여자가 질린 듯 천천히 말했다. 여자치곤 목소리가 낮았다. 꼭 변성기 오지 않은 소년 같았다. 루크는 그리 생각했다. 아까 전의 존대도 그리 상대를 존중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평어를 쓰니 확실히 깔보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는 루크가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 그 사실에 속절없이 가슴이 뛰었다. 여자는 루크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무시하고 방관했다. 위시 웰 스쿨의 학생들의 지정복인 하늘하늘한 드레스, 근육 하나 없어 보이는 가느다란 팔. 매지컬 펜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인데,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지?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이지? 3학년 루크 헌트.”
“아름다운 마드무아젤은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네, 당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겠어?”
여자는 지겨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권태로운 목소리로 제 할 말을 이었다. 꼭 루크와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본 이 같은 태도였다. 자신이 궁금해서 어쩔 수 없어 하는 이들을 많이 다뤄본 사람처럼, 능숙한 태도로 그를 다루면서도 귀찮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태도이기에 루크가 자신을 더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는 것 같았다.
“어제 당신들이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걸 봤거든.”
“멀리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마드모아젤.”
“어제 무도회에 참여하지 않았거든.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지.”
조소하듯 말했다. 상대를 조롱할 마음은 없어 보였으나 내뱉은 문장의 내용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똑같은 마법사면서도 마치 자신은 홍련의 꽃이 세상에 퍼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냉담한 태도였다. 여자의 말에 루크가 연극하듯 과장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래서!”
“그래. 그러니 용건을 말해주겠어? 참고로, 나는 회장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두지.”
“오, 아름다운 마드모아젤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다가온 건 아니야. 맹세코. 그것보다는…….”
“그것보다는?”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어?”
여자가 한쪽 입술을 끌어올렸다. 입술 밑에 있는 갈색 점이 그제서야 눈에 띄었다. 그 점을 보고 나서야 루크는 자신이 냉정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라도 자신을 사냥할 수 있는 사냥꾼을 앞에 두고 속없이 들떴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여자는 같은 온도의 시선으로 루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한 마디를 뱉었다.
“에스.”
“에스?”
“그게 내 이름이야. 성은 없어.”
“나이는?”
“스물여섯.”
앳된 얼굴은 도저히 스물여섯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갓 성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 루크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좁혔다. 여자가 픽 웃었다.
“장난이야. 나는 열아홉이란다. 정식으로 소개할게. 나는 에스야. 위시 웰 스쿨에 다니고 있지.”
“저는 루크 헌트입니다, 마드무아젤 에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다니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당신보다 한 살이 적습니다.”
악수하려 건넨 손을 받아간 루크는 그 손등에 키스했다. 에스가 순간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기에 루크는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진 표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에스는 루크가 손을 놓아주자마자 손을 거두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럼, 이제 용건을 물어봐도 될까, 멋진 신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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