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리들유키] 거울 저편에 있는 것

<span class="sv_member">린더</span>
린더 @frauroteschuhe
2025-11-24 20:08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야? 리들은 혀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켰다.

 

 

 

거울 저편에 있는 것

리들 로즈하트와 ■■■




유키는 하츠라뷸의 어떤 부분이 가장 좋니?”


리들의 질문에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리들과의 티타임은 조금 급하게 잡힌 약속이었다. 중정에서 에이스와 떠들던 유키에게 리들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오늘 일과가 끝난 이후 함께 티타임을 가지지 않겠냐고. 당연히 모두와 함께하는 티파티일 줄 알았더니 방문한 하츠라뷸의 티룸에는 리들밖에 없었고, 첫 마디로는 이런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하츠라뷸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요? 음…….”


조금 놀랐지만 유키는 찻잔을 내려놓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리들이 깊어지는 갈색 눈동자를 헤집듯 바라보았다. 생각을 정리하듯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던 유키는 곧 제 생각을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장미 정원을 빼놓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객관적으로 잘 꾸며진 정원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이 있다고나 할까요. 붉은 하트 여왕의 법칙에 입각해 지어진 장미 정원인 만큼 그냥 붉은 장미를 심으면 될 것을, 굳이 하얀색 장미를 심어 두고 마법을 사용해 그걸 빨갛게 바꾼다는 게…… 좀,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거죠. 전통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통이 무척이나 사치스럽다면 현대에 그걸 굳이 재현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하트 여왕의 전설을 현대에 굳이 재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할까…….”

유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 그건 의미 없는 일이 아니야. 하트 여왕의 전설을 재현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시나 봐요?”

필요할 때는 사치스러운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것을 보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거든.”

그것도 그렇지만요…….”

그래. 계속 말해 보렴.”


유키가 입술을 삐죽이다가 다시 찻잔을 들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입이 바짝 마른 탓이다. 적당히 식은 찻물로 목을 가볍게 축인 이후 다시 입을 열었다.


트럼프 병정을 모티브로 삼은 장식물들도 아름답고…… 조경의 아름다움을 제외한다면, 역시나 사람일까요. 에이스나 듀스는 무척 재밌고 좋은 친구예요. 그림과 함께 사고만 치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래도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트레이 선배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시죠. 저는 외동인데, 트레이 선배랑 있으면 오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케이터 선배도 재밌는 걸 많이 알려주시고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뱉기 전에 유키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안면 있는 하츠라뷸 학생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주워섬기는 동안 리들이 제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턱을 괴고 유키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칭찬을 하느라 그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유키는 겨우 그 시선을 눈치채고 조금 긴장해서는 리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리고 리들 선배는……..”

, 나는?”


유키가 긴장한 것을 보고 리들이 긴장을 풀어주려 미소지었다.


말해주지 않을래? 하츠라뷸의 기숙사생이 아닌 사람의 시점에서의 는 어떤지.”

으으…….”


유키가 담홍색으로 우러난 차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결국 목적은 이거였구나. 유키는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눈 앞에서 말하기 곤란한 것도 있단 말이죠. 대답을 종용하는 리들의 눈길을 피하던 유키는 결국, 리들을 똑바로 바라보고선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얼굴만 보면 폼피오레에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아?”

선배가 하츠라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츠라뷸의 정신을 사람 모양으로 빚으면 리들 선배 같을까. 에이스나 듀스는 선배를 무척 무서워하지만 그렇게 무서운 분도 아니고.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인 건 맞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정신수양이 모자란 탓에, 사람의 겉모습에 많이 신경을 쓰거든요. 리들 선배의 갓 핀 장밋빛 머리칼과 대조적인 잿빛 눈동자는,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좋아하는 얼굴……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주실 거죠?”

여전히 얼굴빛 하나 안 바꾸고 그런 말을 하는구나. 아부한다 해서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했을 텐데.”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거든요?”

그래, 그래. 그리고?”


리들이 턱을 괴고 유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쳐다보는 거, 반칙이거든요?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유키는 대충 한숨을 쉬고 말을 계속했다.


에이스나 듀스의 말에 따르면 무척 대단한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선배의 유니크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잘 모르겠고요. 으음, 안 와닿는다고나 할까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마법이 아예 없었거든요.”

마법이…… 없는 세상이라고?”

……아차.”


유키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딱 굳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한 순간의 부주의로 밝혀버린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유일한 여학생으로서 이곳저곳에서 주목받고 있는 참이다. 움직일 때마다 소문의 감독생’ ‘마법을 못 쓰는 여자애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지겨웠다. 거기에다가 이세계에서 왔다라는 사실을 추가하면 얼마나 귀찮아질지 알 수 없었다. 이 세계의 보호자라고 할 수 있는 학원장도 그 사실은 숨기는 것이 좋다고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런 사실을 리들에게 알려줘도 괜찮나? 유키가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리들의 눈을 피했다.


그러나 이어진 리들의 말에 유키는 다시 리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유키의 비밀을 들어버린 거니? 원한다면 못 들은 걸로 해 줄게.”


걱정이 가득 찬 얼굴. 마법이 없는 세계에 대해 궁금해할 법도 한데, 자기 자신의 궁금증보다 타인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저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울렁거린다. 유키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건, 완전히 반칙이다. 목이 바짝 타 와 유키는 적당히 식은 홍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알려지면 시끄러워질 수 있다고 해서.”

확실히, 시끄러워질 만한 이야기긴 하구나.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녜요. 리들 선배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 말하고 다니실 분이라는 생각도 안 들고. 케이터 선배였더라면 무의식중에 말하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유키는 케이터에게 상당히 박하구나.”


리들이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다. 유키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케이터 선배는 친구가 많으시잖아요. 마지카메도 좋아하시고. 비밀이라고 말씀드리면 지켜주실 거 같긴 하지만…… 평소에도 너무 가볍게 대하시니까.”

그래 봬도 속까지 가볍지는 않은 사람이야.”

알긴 하지만요…….”


유키가 한숨을 쉬었다. 이런 말까지 해도 되려나.


어둠의 거울을 통해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어딜 좀 다쳐서요. 머리도 원래는 찰랑거리는 검은색이었는데 하얗게 새 버리고.”

원래는 검은 머리였구나.”

. 강한 힘에 끌려온 이후 마차에 실려 여기까지 온 거라…… 이런 것까지 말씀드리기에는 좀. 뭔가 짐을 얹어드리는 것 같기도 해서.”

……무서웠겠는걸.”

지금은 괜찮아요. 그 세계도 재미있는 곳이어서 돌아가고 싶긴 하지만…….”

……재미있다고? 특이한 단어 선택인걸.”


리들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를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 그러니까……. 여기랑은 법칙이 조금 다르니까요. 정령이나 마법 같은 게 없고, 오로지 물리법칙만으로 움직이는 세계기도 하고.”

이곳에도 물리법칙이라면 있는데.”

그곳에는 마법이 없어서, 오로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힘만을 쓸 수 있거든요. 그런 힘을 이용하여 밤을 환하게 밝히고, 사람이 노를 젓지 않아도 배를 움직이게 하고…… 마법석 없이도 그런 일이 일어나요. 그런 곳이니까요.”

그러니, 마법이 없는…… 오로지 기계 문명의 시대라는 거구나.”

. 물을 끓여서 모터를 돌리고, 그 모터가 돌아가면서 만든 힘을 저장해서… 그런 식으로 에너지를 얻어서 쓰는 거죠.”

재미있는 이야기긴 하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보고 지구에 대해 조금 더 떠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유키는 곧 입을 다물었다.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와 지구는 마법이외에는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리들의 학구열 또한 알고는 있으나 그가 정말로 지구의 문명에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법이 없다는 이유로 안타깝게나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유키는 냉소를 삼켰다.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본래 인간이라는 게 그런 법이다. 인류라는 것은 나라라거나 언어가 다른 정도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종족이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할 수 있겠으나…… 글쎄. 유키는 리들도, 에펠도, 에이스도. 심지어는 그림마저도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터라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서로간의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었고, 유키는 이세계에서 왔다는 사실마저도 숨기며 살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유키 화이트는 미소 짓는다.


. 그것도 그렇고, 사람들도, 존경받는 가치도, 모든 것이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와는 달라요. 언어는 어떻게 통하는 모양이지만…….”

그래. 그렇게 다른 곳인데도 언어가 통한다는 건 신기하더라. 지난번에 네가 샹송을 들려줬을 때도…… 휘석국의 언어 중 하나로 불렀잖니.”

. 아마, 어떻게든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돌아갈 수도 있겠죠.”

그래? ……그렇구나.”


유키가 리들의 눈을 가만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리들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차분한 표정이었다. 청회색 눈동자가 가만히 가라앉아 있었다. 유키는 화제도 바꿀 겸, 내친김에 조금 더 말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곳에서 그레이트 세븐이 그렇게 추앙받는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네 세계에는 그레이트 세븐이 없는 거니?”

, 그들은 존재하지만…… 그들은 제 세계에서는 안타고니스트거든요.”

안타고니스트, 라고?”


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들은 잠깐이지만 조금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은 유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리들은 혼란에 빠져 유키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지?


리들은 유키가 온 세계를 상상했다. 유키의 원래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좁아졌다. 그가 알고 있던 위인은 악당이며, 그가 믿었던 가치는 모두 뒤집힌 세계다. 마법은 존재하지 않고, 차가운 기계 문명이 세계를 움직인다. 만약 제가 그런 세상에 도달한다면, 유키처럼 진심으로 웃지는 못할 테다. 속이 없는 건지, 정신력이 강한 건지. 그렇게 생각하던 리들은 곧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 낸다. 유키도 진심으로 웃고 울기에는 시간이 꽤 걸렸던 것이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땅에 발 붙이고 선것 같은 안정감이 보였었지. 단순히 학교에 적응이 끝나서 그랬나 싶었는데, 유키 화이트는 그 기간 동안 생각보다 치열한 고민을 한 모양이었다.

유키는 리들이 생각하는 동안 리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가라앉은 눈도, 좁아진 미간도, 언제나 그렇듯 예쁘네. 리들이 시선을 올리자 유키와 시선이 마주쳤다. 유키가 반사적으로 배시시 웃었다. 리들이 유키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유키가 여전한 미소로 질문했다.

 

선배, 제가 불쌍해요?”

그런 생각은 안 했어.”


불쌍하다는 생각이나 섣부른 연민은 하지 않았다만, 리들은 한 발자국 늦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에요. 동정받고 싶어서 그런 말을 꺼낸 건 아니라서.”

그래. 그러지 않도록 주의할게.”

뭐…… 그것까지는 선배 마음이지만요.”


유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리들은 다시 찻잔을 드는 유키를 가만 바라보았다. 저 애는 집에 돌아갈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돌아가겠지. 리들이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듣기로는, 제 세계에 사랑하는 것을 너무 많이 놓고 왔다고 하는 것 같았고. 리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저런 여자애에게, 마법도 쓸 줄 모르는 무능력자에게 이런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후련한 마음을 가지는 게 아니라, 나를 내 세계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괘씸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어쩔 방법이 없었다. 악덕이 미덕이 되고, 미덕이 악덕이 되는 제 비틀린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유키의 사고방식을 바꿔주고 싶었다. 무거운 마음이다. 리들은 검은 마음을 삼켰다. 학원장이 저 애를 돌려보낼 방법을 평생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 붉은 찻물을 내려다보며 생각하던 리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애는 꼭,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만 같아.


리들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갓 핀 장미 봉오리처럼 수줍은 마음이었다. 가슴을 열어 보여주고 싶지만, 아직 그러고 싶지 않은 붉은 마음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키에게 제 생각이 모두 들킨 것만 같았다. 수줍은 붉은 꽃봉오리부터, 검고 끈적이는 것까지. 정말, 모두 알았으면 어떡하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리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선배.”


리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기만 하던 유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무슨 비밀?”


유키가 리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귓가에 붉은 입술을 가까이 했다. 지러운 소프라노가 속삭인다.


제 진짜 이름은 유키도, 화이트도 아니에요.”


리들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굳은 채 리들은 그가 아는 유키 화이트를 떠올렸다. 마법이 아예 없는 곳에서 온 사람. 미덕이 악덕이 되고 악덕이 미덕이 되는 곳에서 온 이세계인. 자신의 세계에 사랑하는 것을 너무 많이 놔두고 왔다고 울던 여자아이.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진짜자신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생각인가? 자신의 세계로 온전히돌아가기 위해? 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야? 혀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켰다. 당연한, , 아닌가.


머릿속에 떠오른 대답에 마음이 요동쳤다. 리들 로즈하트가 지금까지 봐온 유키 화이트라면 당연하다. 당연히 돌아갈 것이다. 소녀는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내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날아갈 것이다. 마법이 없는, 네 가지 힘이 지배하는 기계 문명의 세계로 영영 가 버릴 것이다.

 

리들 선배. 이건 에펠에게도 아직 안 가르쳐준 건데요…….”

 

멍한 머리였지만 그것 하나만은 기뻤다. 유키의 절친인 그 폼피오레의 신입생보다도 제가 먼저라는 사실이. 리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게로 허리를 굽힌 유키를 가만 바라보았다.


제 진짜 이름은 말이에요…….”


귓가에 간지러운 발음의 이름이 지나갔다. 리들이 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키는 사고를 쳐 버린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그림의 숙제를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유키.”

. 선배.”


숨기던 이름을 알려준 거라면, 조금은 특별해진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작은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다고. 그렇게 착각해도 될 테지.

 

……어려운 것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러 와.”

감사해요. 오늘 차도, 디저트도 맛있었어요.”


리들은 인사하고 떠나가는 유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귓가에 남는 간지러운 목소리. 세차게 뛰는 심장이 유키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시라사키, 유키노.”


리들은 이름을 혀 위에서 굴렸다.


녹아 사라질 것 같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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