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말레유키] 이름의 힘

<span class="sv_member">린더</span>
린더 @frauroteschuhe
2025-11-25 06:22

……옴보로 기숙사로 돌아와 버렸네.”

 

유키 화이트는 중얼거렸다. 기숙사를 완전히 빼앗기기까지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 몸에 익은 습관이라는 것은 쉽게 떠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마침내 도착한 곳이 옴보로 료였다. 이대로라면 기숙사를 빼앗기고 나서도 습관적으로 이곳으로 발길을 돌릴지 몰랐다.

 

여기에도 이제 익숙해진 걸까.’

 

마음이 서글펐다. 유키 화이트가 아닌 시라사키 유키노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고 싶은데, 이 곳에 너무 익숙해진 것만 같았다. 사실 원래 세계라는 게 전부 꿈이나 망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참이었다. 유키는 우울한 생각에서 빠져나오려 고개를 쳐들었다.

 

……예쁘다.”

 

검은 하늘 아래 황록색 빛이 반짝였다. 유키는 반딧불이처럼 보이기도, 연녹색 불길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는 빛의 파편에 문득 손을 뻗었다.

 

……? 너는…….”

, 또 만났네요, 뿔 달린 신사 분.”

뿔 달린 신사 분이라니……. 보아하니 아직 호칭을 정하지 못한 모양이로군.”

 

그 때의 미남자였다. 결국 제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은 사람. 유키가 씩 웃었다.

 

. 그림은 뿔이 달린 남자니 츠노타로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이름도 모르는데 애칭을 함부로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하는 대로 부르라고 허락하지 않았던가?”

 

조금 꽁해 보이기도,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표정이었다.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 분명 그러셨죠? 근데, ‘츠노타로라니. 안 어울리지 않아요? 모모타로 전설 속의 모모타로도 미남자였다지만, 신사분과 츠노타로라는 이름은 안 어울리는데요.”

모모타로 전설이라, 처음 들어보는 전설인데.”

, 저희 쪽 전설이라 모르실 수도 있죠. 근데, 정말 츠노타로가 좋으세요?”

 

유키가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츠노타로라는 애칭은 나름 귀엽긴 하지만, 전설 속 복숭아 소년도 아니고, 그런 촌스러운 애칭으로 다른 사람을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관계의 시작이란 이름을 알리는 것부터니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동그란 눈에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 후후, 아하하하! 이 나를 츠노타로라니! 정말 무서움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군. , 좋아. 멋대로 부르라고 한 건 나니까.”

그래도 제가 싫은데요. 정말 이름을 가르쳐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유키가 입술을 삐죽였다. 저 사람은 정말 그걸로 좋은 걸까?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자 남자가 다시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이름에 상당히 집착하는군. 정말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뭐어…… 이름이란 건 중요하니까요. 하찮은 이름이 붙으면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도 하찮아지기 마련이에요. 이름을 그냥 알려주시기 싫다면, 제 본명과 교환하실래요?”

 

유키가 눈을 깜박였다. 지난번부터 이름을 가르쳐주면 큰일나는 것처럼 구는데, 유키는 정말이지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하던가. 뭘 알아야 두려운 것도 생기기 마련이다.

 

네 본명? 그것에 큰 의미라도 있는 건가?”

으음. 어쨌건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은 가명이니까요. 제 본명은 시라사키 유키노예요. 비록 지금은 유키 화이트라고 불리고 있지만.”

시라사키 유키노, ……. 익숙하지 않은 울림의 이름이구나. 흥미로워.”

그러니 신사분도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남자가 유키를 빤히 쳐다보았다. 장신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았지만 유키는 어쩐지 그가 두렵지 않았다. 그는 도저히 자신을 해칠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만이 단단한 진실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곧게 바라보는 기묘한 대치 상황. ,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로 대치는 막을 내렸다.

 

좀처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아이구나. , 좋아. 특별히 이름을 가르쳐주도록 하마.”

.”

내 이름은 말레우스 드라코니아. 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나요?”

 

유키가 대답했다. 말레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의 어디에서 두려움을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말레우스 씨는 저를 이유 없이 해칠 것 같지 않거든요.”

이유가 생기면 해칠 것 같다는 뜻이군.”

세상에는 여러 일들이 생기니까요. 그림도 지난번에 참치 캔을 더 달라며 제 팔을 할퀴었다고요! 여길 보세요.”

 

유키가 불평하며 와이셔츠의 팔목을 걷어 상처를 내보였다. 딱 말레우스의 생각만큼 깊은 상처였다. 말레우스가 혀를 쯧 찼다. 유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다시 웃었다.

 

이 세계에서 저를 가장 잘 아는 그림도 그러는데, 다른 친구라고 해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상황은 항상 변하는 거고, 좋은 친구가 언제나 좋은 친구일지는 모르는 거니까.”

친구, .”

! 말레우스 씨와 저는 친구잖아요. 서로의 본명을 알려준, 친구.”

 

말레우스는 놀란 표정으로 잠시 말이 없었다. 유키는 불안한 눈을 하고 말레우스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저랑 친구하기 싫으세요?”

후후. 이 나를 스스럼없이 친구라고 칭하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너는 정말로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좋다. 특별히 허락하도록 하지.”

다행이다. 너 같은 꼬맹이랑 친구하기 싫다고 하셨으면 슬펐을 거예요.”

그래. 그럼 친구로서, 질문 하나 해도 되나?”

!”

 

말레우스가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무엇을 그리 고민하고 있던 거지?”

사실은요…….”

 

유키가 지금까지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전교생의 머리에 말미잘이 자란 일이며,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옥타비넬의 기숙사장 아즐 아셴그로토와 거래를 하고, 그 대가로 기숙사에서 쫓겨난 일까지. 말레우스는 그 이야기를 가만 듣다 말했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