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9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림은 날듯이 성적 우수자 목록이 붙어있다는 게시판 쪽으로 달려갔다. 유키가 “그림, 안 돼!” 따위를 외치며 돌발행동을 하는 그림을 쫓았다. 에이스와 듀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역시 평균 90점 이상이면 50등 안에는 여유롭게 들었겠지?”
“어, 없어! 나님의 이름, 안 들어가 있어―!”
저 앞에서 그림이 비명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해진 에이스와 듀스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아까 전 세 명이 점수를 비교해 보았을 때 그림의 점수가 가장 낮았지만, 그림의 점수도 낮은 편은 아니었다.
게시판 앞은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성적 우수자 목록을 확인하러 온 학생들이었다. 인파를 뚫고 들어간 에이스와 듀스는 성적 우수자 목록을 확인하고 아까 전의 그림처럼 비명을 질렀다. 성적 우수자 목록에는 이름 옆에 전교과 총점이 적혀 있었는데, 상위 30명이 만점이었다.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한 에이스와 듀스는 인파를 다시 뚫고 나와 일단 그림과 유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키는 조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껏 해온 것의 총합을 따지면 장학금은 타겠지만, 30명 이상이 만점이라니. 시험 공부를 성실히 해 온 유키의 체감으로는 그리 쉬운 시험도 아니었다. 시험기간에 도서관에 있는 학생들은 중간고사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자습서로 공부하는 사람이 몇 있었을 뿐이다.
“역시 조금⋯⋯ 이상하지 않아?”
벤치에 앉은 유키가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유키의 옆자리에 앉은 그림이 울상으로 유키의 팔에 들러붙었다. 그림은 곧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것보다⋯⋯ 나님, 어떡하냐구.”
“계약 건, 말이지?”
유키가 톡 쏘았다. 그림이 고개를 들자 유키가 그림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엣?! 유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구!”
“모를 줄 알았어?”
유키가 힘없이 말했다. 옥타비넬의 쌍둥이가 그렇게 계약을 종용했는데 모를 리가. 계약의 상세한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계약 같은 것이 오가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듀스가 깜짝 놀라 유키의 어깨를 붙들고 질문했다.
“유, 유키도 그 사람이랑 계약한 거야?”
“아, 안 했어! 할 리가 없잖아! 그런 계약.”
유키의 대답을 듣고도 듀스는 여전히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그러다 여자아이의 어깨를 억지로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듀스가 황급히 유키에게서 떨어졌다.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듀스를 보고 있었다.
“듀스.”
“미, 미안! 유키! 그게⋯⋯.”
“아니, 그것보다 듀스. 너, 머리에!”
듀스의 머리에 푸른 형광 말미잘이 자라 있었다. 아직 상황파악을 못한 듀스가 제 머리를 더듬어 보았다.
“으악! 머리에 말미잘이!”
“에이스의 머리에도 자랐잖아!”
“유키~! 어떡하냐구!”
바보 트리오의 머리에 말미잘이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한 유키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에 말미잘이 자란 채로 안절부절 못하는 세 바보들의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계약을 불이행하면 저런 꼴이 되어버리는 거야?’
계약 안 하기를 잘했다. 유키는 팔에 닭살이 돋는 걸 느끼고 제 팔을 문질렀다.
“너희들⋯⋯.”
“시끌시끌하다 싶어서 와 봤더니, 너네였냐? 뭐 하고 있어?”
“잭, 너도 계약을⋯ 말미잘이 안 자라 있다고?!”
유키의 말을 자른 사람은 B반의 잭이었다. 유키에게 미안하다는 뜻의 눈인사를 한 잭이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러. 너희들 머리에 그거, 뭐냐?”
“이건, 뭐냐면⋯ 으악! 아파!”
말미잘에 관해 설명하려던 세 바보들이 머리에 자란 작은 말미잘에 끌려가듯 움직였다. 머리가 뜯기는 것 같다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유키의 눈에는 더없이 바보 같았다. 잭도 비슷한 감상인지 중얼거렸다.
“정말 멍청한 모습이네.”
“잭. 쫓아가보자.”
“뭐? 왜 나까지?! 나와는 상관없잖아?”
“혹시 무서운 거야?”
유키가 눈에 힘을 주고 잭을 노려보았다. 도발하는 것이라기에는 너무 올곧은 표정이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이기도 했다.
“누가 겁쟁이라고?”
“친구들 머리에 말미잘이 자랐잖아! 한 번 봐주는 것도 싫다는 게 겁쟁이지 뭐야?”
“저런 녀석들 친구로 둔 적 없어!”
“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뭐, 뭘 할 건데?”
유키가 갑자기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며 머리를 짚었다. 잭은 눈을 의심했다. 분명 아까 전까지 눈을 뾰족하게 뜨고 노려보더니 갑자기 이렇게 아플 수 있는 건가? 고향에 있을 동생들은 아직 어려 갑자기 아픈 일이 자주 있었다. 고등학생이면 이제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닐 텐데, 갑자기 이렇게 쓰러지거나⋯
“아아, 마지프트 대회에서 생긴 상처가 쑤시네⋯⋯.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리 없지 않는가!
유키는 한 달도 전의 일을 우려먹는 중이었다. 매지컬 시프트 대회를 관람하다 잭이 잘못 쳐낸 디스크에 맞았던 일 말이다. 한 달도 더 전의 일이라 이제는 간지럽지도 않을 텐데, 유키는 아픈 척하다 잭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었다.
“내 ‘친절한 친구’ 잭 하울 군이 말미잘들을 따라가는 걸 도와주면 싹 나을 것 같은데⋯⋯ 아아, 아파라⋯⋯.”
“칫⋯⋯! 치사하게! 너, 이 학원에 너무 심하게 적응한 거 아니냐? 알았다. 알았어. 같이 가 주면 될 것 아니야!”
잭이 고개를 흔들었다. 유키가 생글생글 웃으며 바보 트리오가 사라진 방향으로 먼저 걸었다. 걸어가는 말미잘 좀비들이 몇 더 있었으므로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유키와 발맞춰 걸어주던 잭이 투덜거렸다.
“나는 이 현상의 원인이 뭔지 궁금할 뿐이야. 별로 너나 그 녀석들을 위해서는 아니라고.”
“아아, 머리가⋯⋯.”
“어이, 그건 미안하다니까! 아무튼 착각하지 마!”
어쩌다가 이렇게 치사한 녀석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게 됐는지! 잭이 짜증스럽게 제 머리를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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