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8
라기의 의미심장한 말과는 달리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 뒤의 일주일은 그야말로 평화롭게 흘러갔다.
“어이, 멈춰, 그림! 오늘은 절대 안 봐 줄 거야!”
“헤헹, 그렇게 말하면 멈추겠냐구~!”
‘아니, 완전히 평화롭게 흘러갔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
유키 화이트는 교실 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에이스와 그림을 피곤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런 일도 한두번이어야 말릴 기운이 나는 법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며 싸워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냥 ‘기운 좋네.’ 정도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 녀석들은 질리지도 않나 봐.”
“그러니까 말이야. 또 뭐 때문에 싸우는 거야?”
듀스의 중얼거림에 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림과 에이스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중이었다. 유키가 씩씩대는 에이스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에이스는 잔뜩 약이 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유키! 너, 감독생이면 그림 관리 좀 해! 이 녀석, 또 내가 사 둔 크림빵을 훔쳐 먹었단 말이야!”
“또? 그림. 간식이라면 기숙사에서 가져온 게 있잖아?”
“그건 벌써 다 먹었다구! 그리고 훔친 게 아니라! 책상 위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워 먹었을 뿐이라구!”
“보통 책상 위에 놔둔 건 떨어져 있는 거라고 안 하거든! 그림 너 이 녀석!”
에이스가 그림에게 소리쳤다. 특기인 바람 마법을 사용하려는 듯 매지컬 펜을 고쳐 잡고 그림에게 겨눴다. 그림 또한 지지 않고 불을 내뿜으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에이스와 그림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싸움을 시작하려는 건 매번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유키는 침착하게 두 사람 사이에 섰다.
“둘 다 적당히 해―!”
외치는 목소리가 상당히 컸다. 유키가 에이스를 흘겨보자 에이스가 멋쩍은 표정을 하며 메지컬 펜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아, 역시 마법은 그만둘래. 또 벌로 창문 청소하게 되면 귀찮고.”
“헤헹, 너도 가끔은 멀쩡한 말 하잖아? 나님만 마법 쓰는 것도 치사하니까 이번만 봐 주겠다고!”
“⋯⋯어?”
유키와 듀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스와 그림이 마법으로 싸우다가 교실이 새까맣게 탄 것만 해도 이미 한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말려지지도 않아서 학원장이 달려오기까지는 멈추지도 않았고.
“웬일이래? 너희들이 싸움을 그만두고.”
“별로, 크림빵 정도로 너구리랑 싸우는 게 바보 같잖아? 애초에 그냥 유키한테 하나 사달라고 하면 되고. 유키. 사 줄거지?”
에이스가 유키에게 눈을 찡긋거려 보였다. 유키가 에이스를 빤히 보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가 받는 생활비 장학금은 풍족하게 쓸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구에게 빵 하나 못 사 줄 금액도 아니었다. 그림의 간식이 하나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림도 ‘나쁜 짓을 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라는 법칙을 알 때도 되었다.
“와-앗. 진짜 사 주는 거야? 그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는데?”
“이번에는 그림의 간식비에서 뺄 거니까 괜찮아.”
“뭐야?! 너무한다구!”
그림이 빽 소리를 질렀다. 유키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림을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키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시간은 수업이 시작되기 3분 전, 수업 준비를 위해 크루웰 선생이 교실에 도착했다. 떠들고 있던 학생들도 크루웰이 반에 들어오자 입을 다물었다. 교탁 앞에 선 크루웰이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오늘도 활기차구나. 강아지들. 수업 시작하기 전이지만 이 몸이 오셨는데도 떠들고 있진 않겠지?”
유키가 그림을 연행하듯 안아 들고 에이스에게 “좀 있다가 점심 시간에 봐.”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유키가 떠나자 에이스와 듀스도 제 자리에 앉았다.
“좋아. 착하게 앉아 있도록. 모두 착석하면 성적표를 나눠주지.”
모두 기대하는 것이 있는지 떠들던 것을 멈추고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문제아들이 많은 1-A반 학생들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지시에 따르는 것은 담임인 크루웰으로서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크루웰은 헛웃음을 지으며 출석번호를 불렀다. 성적표를 받은 학생들이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그림도 그 중 하나였다.
“이것 보라구, 유키! 나님, 평균 85점이야!”
“뭐어?! 거짓말 하지 마! 그림 너, 항상 낙제였잖아!”
“뭐라구우?! 보라구 유키! 내가 유키한테 거짓말 같은 걸 왜 하냐구!”
그림이 화가 나서 방방 뛰며 제 성적표를 팔락거렸다. 그림의 성적표를 용케 받아든 유키는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항상 낙제점이거나 낙제를 겨우 면할 정도의 점수였던 그림의 점수가 이상하리만치 올라가 있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크루웰 선생이 다시금 말했다.
“너희들, 이번에는 꽤 열심히 한 것 같더군. 쪽지 시험과 비교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평균이 올랐어. 특히 마법 약학 시험은 3개 학년 전부가 평균 90을 넘겼고, 트레인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마법의 역사도 꽤 좋은 성적이었다지?”
각자의 성적에 만족하고 있던 학생들이 깜짝 놀랄 말이었다. 시험은 공부에 들인 각자의 노력을 평가하기 위해 시행되는 것으로, ‘모두가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나쁜 일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노력의 정도를 평가하기에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는 학생들의 평가로 절대평가를 채용하지 않는다. 등수를 왜 매기겠는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더 우수한 학생과 덜 우수한 학생을 골라내려 그러는 것이다.
“성적 우수자인 상위 50명은 복도에 이름이 게시되어 있으니 기대하도록. 그럼 수업을 시작하지. 교과서를 펼쳐라.”
“시험 끝났는데도 수업인가요?”
“Bad Boy! 그럼 뭐, 중학생 때처럼 편안하게 영화나 볼 줄 알았나? 아쉽게도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는 그런 곳이 아니야. 당장 교과서를 펴도록!”
학생들은 제각기 불만을 꿍얼거리며 교과서를 펼쳤다. 유키도 지정된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나 평소처럼 수업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마법약학 시험 평균이 90점이 넘는다는 소리에 그림이 많이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유키는 불안을 숨기지 못하는 그림을 흘긋흘긋 쳐다보았다. 그림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범위의 사고라면 좋을 텐데⋯⋯.
- 이전글[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9 26.07.21
- 다음글[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7 26.07.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