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옥타유키]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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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1 15:47

학원장과 잭이 돌아가고 난 이후로부터 한참이 지났지만 그림은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예 유키가 싫어져서 다른 기숙사로 가버린 걸까? 그 「모스트로 라운지」라는 곳에서 일하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림의 생각을 하며 유키는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냅다 침대에 누웠다. 낡은 기숙사의 고스트들이 유키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까 학원장과 잭 앞에서는 강한 척했지만 유키도 생각보다 많은 심력이 소모되었다. 유키와 그림을 계속 지켜본 고스트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유키, 괜찮니?”

“안 괜찮을 건 뭐가 있겠어요.”

“그림 도령과 또 싸운 거야?”

“싸운 건 아니에요.”


유키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그 소동을 ‘싸웠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유키의 잘못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림의 자업자득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림이 유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서, 끝까지 유키에게 거짓말을 해서. 그림을 그곳에서 꺼내오지 않은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림을 머리에서 치워버릴 수 없었다.


낡은 기숙사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낡은 기숙사의 문을 두드릴 사람은 바보 트리오밖에 없다. 에이스와 듀스는 하츠라뷸로 돌아갔을 테니 남은 인물은 그림밖에 없다. 유키가 후다닥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그림!”

“다녀왔습니다…… 힘들다구…….”

“어디 맞았다거나 뭔가 뺏기진 않았지? 괜찮아?”

“엄청 일 시켰다구…… 근육통이익―!”

“―이 바보 고양이!”

“고양이 아니라구!”


유키가 그림의 어깨를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그림의 몸이 길게 늘어났다.


“그런 위험한 계약을 왜 한 거야! 이 바보!”

“몰라! 부하는 모른다구!”


그림이 울상으로 바둥거렸다. 바둥거리는 그림에 유키가 그림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유키도 이렇게 그림을 혼내는 것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따끔하게 혼내야 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테니까.


“뭐어? 내가 뭘 몰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건 그림이면서!”

“나님도 부하 도움 없이 잘 하고 싶었다구!”


말하면서 감정이 북받쳤는지 그림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유키도 울고 싶었다. 학원장 앞에서는 자기가 이번에도 해결해 보이겠다며 큰소리 쳤지만 유키도 아즐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계약을 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게 유키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림만 빼내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학생들까지 다 구해내야 하는 입장에서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부하는 언젠가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럼 나님은 혼자가 되는 거라구! 그러면 부하 없이도 혼자서 잘 해야 한다구…….”


유키는 입도 열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당연히 언젠가는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이후 혼자 남을 그림과 다른 친구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유키가 없어도 당연히 잘 지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림이 외로울 것이라고는, 모두가 유키의 빈자리를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거야 유키는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으니까.


지금껏 유키는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 제 자리 따위는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빈 자리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태어나서부터 당연하게 마련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 따위는 주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적당히 대하면서 서로의 부재에 상처받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이 세계를, 새로 사귄 친구들을, 그림을 아끼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구, 그리구 멋진 형님은 부하를 지켜주는 거라구. 유키는 마법도 못 쓰면서 뭐든 혼자 하려고 하니까, 나도 유키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다구…….”


그 말에 유키도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키가 그림을 끌어올린 그대로 꼭 껴안았다. 엉덩이를 받쳐 어린아이 안듯 그림을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림이 서러운 듯 더 크게 울었다. 멀리에서 두 파트너가 우는 모습을 쳐다보던 고스트들이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왔다.


“말하지 그랬어…… 말하지 그랬어 그림…….”


유키가 울며 중얼거렸다. 그림이 고개를 흔드는 게 느껴졌다.


한참을 둘은 그렇게 끌어안고 있다가, 유키가 그림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그림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유키가 그 모습을 보고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림 우니까 못생겼다. 머리가 더 커진 것 같아.”

“유키 얼굴도 엉망이라구.”


유키가 제 얼굴을 보고 웃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림이 삐죽거렸다. 유키는 화장지를 뽑아다 그림의 얼굴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림이 훌쩍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님은 성적 잘 받아오면 유키가 좋아할 줄 알았다구…….”

“성적 잘 못 받아와도 나는 그림을 좋아해.”

“그래두, 킁, 부하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다구. 나는 형님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위험한 짓을 하면 돼, 안 돼.”

“안 혼내도 안다구. 훌쩍, 다 망했다구. 머리에 말미잘이나 자라구…….”


그림이 다시 우아앙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었다. 유키가 한숨을 쉬며 엉엉 우는 그림을 끌어안았다.


“울지마, 그림.”

“그치만! 악덕 사장한테 노동 착취나 당할 거라구. 나님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어둡다구!”

“내가 널 그렇게 되게 둘 것 같아?”


유키가 짐짓 화난 척 되물었다. 그림이 놀란 얼굴로 질문했다.


“안 도와줄거라고 한 건 유키라구!”

“그거야 그림도 고생을 좀 해 봐야 이런 짓을 다시는 안 벌일 테니까.”

“유키 나쁘다구! 아주아주 나쁜 부하라구!”


그림이 억울한지 허공에 사지를 휘적거렸다.


“그래, 그림. 내일은 아주 긴 날이 될 테니까, 일단 오늘은 쉬자.”


유키가 그림의 털을 빗기고 잠옷을 건네주었다. 제 품에 안겨 잠든 그림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제 자신과 아즐에 대한 화였다.


그림을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지구에 대한 생각과 걱정으로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유키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해 제 작은 파트너를 불안하게 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불안이 가져온 결과를 보라. 아무리 학교의 대부분이 아즐과 계약을 했다 해도, 이번 그림의 계약은 유키가 그림을 불안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책이 밀려왔지만 자책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유키는 제 방에서 두 발 뻗고 자고 있을 아즐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가만 안 둬. 반드시 복수한다, 아즐 아셴그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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