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제이유키] 테티스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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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0 20:11

방과 후, 트레인 선생의 사무실 앞. 유키 화이트는 사무실 문 옆에 기대어 있었다. 답지 않게 피로한 얼굴이기에 제이드 리치는 별생각 없이 말을 걸었다.


“저런, 피로해 보이시는군요.”

“……아, 제이드 선배. 안녕하세요.”


언제 피곤한 얼굴을 했냐는 듯 유키 화이트가 생긋 웃었다. 언제나처럼 사감 없이 밝은 미소였다. 제 형제를 찾으러 온 제이드 리치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유키의 옆에 섰다.


“또 그 마수가 사고를 친 겁니까?”

“그림이에요.”

“그래요. 그림씨가.”


웃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제이드를 흘겨보던 유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마수를 마수라 부르지, 뭐라 부를까요.’


제이드가 곤란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는 다만 기다리는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유키에게 말을 건 것이지, 유키와 싸우려 온 것이 아니었다. 친하게 지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굳이 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이드는 유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호칭을 정정하고 나서도 미미한 불쾌감이 남아 있었다. 제이드의 곤란한 웃음이 짙어졌다. 유키 화이트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제 주변인들에게 다정하고, 특히 그 마수에 대해서는 유난했다. 만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그 마수의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제이드는 무례하지 않을 만큼만 유키를 쳐다보다, 자신도 유키의 옆 벽에 등을 기댔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


“우연이군요. 저도 플로이드가 쳤다는 사고 때문에 왔습니다.”

“제이드 선배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유키가 희미하게 웃었다. 트레인 선생의 사무실에서는 아까 전부터 그림과 함께 다른 누군가가 혼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플로이드인 모양이었다.


“어쨌건 형제의 일이니까요.”

“인어들의 가족 개념도 인간들과 비슷하군요.”

“그건 아닙니다. 플로이드와 저는 유난히 가까운 구석이 있지요.”

“그래요? 평범한 형제처럼 보였는데.”


유키가 고개를 돌려 제이드를 올려다보았다. 제이드도 시선을 내려, 두 눈이 가볍게 마주쳤다. 유키가 다시 생긋 웃었다.


“저도 형제가 있거든요.”

“친했습니까?”

“세이이치로 와요? 음. 친했다고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태어나 보니까 오빠가 있었는데.”

“세이이치로라. 유키 씨의 이름만큼 특이한 울림이네요.”

“그럴지도요. 어쨌건 오빠가 있었는데요.”


유키가 제이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이이치로와는 전혀 닮지 않은 얼굴. 유키는 그 단정한 얼굴 위로 제 형제의 다정한 웃음을 덧그렸다. 전혀 안 닮았어. 의미 없는 일이며 무례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키는 그를 멈추지 못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그 눈길에 담긴 애틋함에 제이드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님과 많이 친하셨던 모양이군요.”

“네.”


제이드의 얼굴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유키도 고개를 돌려 바닥께를 쳐다보았다. 이 학교에 올 때부터 신고 있던 검은 에나멜 메리 제인 구두가 반짝거렸다.


“그. 커스터드 푸딩을 간식으로 자주 먹었거든요.”

“커스터드 푸딩을 말입니까?”

“네. 직접 만든 건 아니고, 파는걸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라 하나 더 먹고 싶을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한 입 뺏어 먹어도 저한테 화낸 적 없어요. 자기도 먹고 싶었을 텐데.”

“무척이나 인격자인가 보군요. 혹은, 유키 씨를 무척 아끼시거나요.”

“인격자…… 글쎄요. 인격자였나? 어쨌건 사이는 좋았어요.”


유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드가 무심코 말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군요.”

“뭐가요?”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제이드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는 플로이드를 치어 시절 심해에서 서로를 ‘진짜 형제’로 선택했고, 그렇기에 저희에게는 서로를 돌봐야 할 강력한 당위와 동인이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 일단, 네.”

“유키 씨의 오라버님께도, 유키 씨를 아끼고 돌볼 동인이 있었을 겁니다. 유키 씨는 ‘태어나 보니 있었다’라고 하셨지만, 형제는 그런 법이니까요.”

“……그렇겠죠.”

“그런데, 유키 씨에게는 그림씨를 돌봐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유키 화이트가 동그란 눈을 순하게 슴벅였다. 갑자기 어려운 말을 꺼낸다 싶었는데, 결국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유키가 그림을 왜 그렇게 아끼는지. 제 한 몸 챙기기도 힘들 사람이 왜 하찮은 마수 하나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유키 화이트는 생각한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야 그런 거니까. 사람이란 꼭 이유가 있어야만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계에 가깝지. 그리 생각하며 유키는 제이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쳐다보면 이유라도 알 수 있을 것처럼 빤히. 그러나 제게 웃어 보이는 제이드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제이드 리치도 사람 마음의 작용 형태를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이드는 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인 사람 아니던가.


‘이상한 선배.’


유키는 그리 생각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두었다. 제이드 리치는 가끔 아주 당연한 것을 이상하다는 듯 질문하곤 했다. 그닥 유키 화이트에게 관심이 있지도 않으면서 뻔한 것을 물었다.


‘인어라서 그런가.’


인어라서 인간의 생태를 잘 모르는 걸까? 그렇지만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서 사람으로 분류되는 종족들이 서로 크게 다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혼자서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만한 뻔한 것을 질문하는 저의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야, 학원장에게 부탁받았으니까요.”


그래도 대답하는 이유는, 그 얼굴에는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키 씨라도 누군가에게 부탁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헌신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헌신까지요? 딱히 그렇게까지 헌신하지도 않는데요. 그리고 누가 부탁한다 해서 그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


부드럽게 웃고 있던 제이드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낡은 기숙사의 감독생 유키 화이트가 제 파트너 마수인 그림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큼 새삼스러운 일도 없는데도.


제이드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럼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음……. 그런 걸 물어보셔도.”


곤란한 표정으로 유키 화이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어 재잘대기 시작했다.


“아. 예를 들면, 그, 제 세계에는 신과 결혼하지 못해 결국 인간과 결혼해야 했던 테티스라는 여신의 신화가 있거든요. 근데요, 테티스는 신이잖아요. 테티스가 그 인간을 정말로 사랑했을까요?”

“이 흐름이라면, 사랑하지 않았겠군요.”

“치. 제이드 씨는 눈치가 너무 빠르세요. 저라면 진짜 싫었을 것 같거든요. 애초에 그 인간의 구혼을 받아주지 않아도 테티스는 여신이니까, 그냥… 결혼 안 하고 처녀신으로 재밌게 살면 되잖아요.”

“그렇지요.”


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 문 안에서 들려오던 트레인 선생의 설교가 잦아들었다. 유키는 조금 더 빠르게 말했다.


“그런데 어쨌거나 그 남자랑 결혼했으니까. 초반에는 그를 사랑하진 않았더라도, 계속 함께 지내다 보면 신경 쓰고 아끼게 되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저랑 그림도 그런 거라서.”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 마수를 아끼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함께 있다 보니까 서로를 아끼게 되었다. 이야기의 요지는 그런 것이겠네요.”


제이드가 황당한 눈으로 유키를 쳐다보았다. 유키가 눈꼬리를 뾰족하게 뜨고 바로 반박했다.


“마수가 아니라 그림이라니까요.”

“유키 씨는 고집이 있으시네요.”

“제이드 씨도 고집이 있으시고요.”


그런 말과 함께 트레인 선생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짜증스러운 얼굴의 플로이드와 지친 얼굴의 그림이 차례로 나왔다. 유키를 발견한 그림이 우는소리를 하며 유키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유키가 그림을 끌어안고 쓰다듬는 것을 멍하게 보는 제이드를 플로이드가 잡아끌었다. 바닥을 밟는 구두 소리가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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