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슬슬 감깁니다.
45분이 언제부터 이렇게 긴 시간이었죠?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점점 멀어져갑니다.
그래서 그 작품의 주인공이 뭘 어쨌다는 거냐구요.
거친 바다의 풍랑에도 굴하지 않고 끝없이 나아가고, 나아가고……
아아, 그 불굴의 의지라는 거.
당신도 알고는 있는데요.
점심을 방금 먹은 5교시의 문학 수업에서,
게다가 당신이 그런 강렬한 생의 의지를 느끼기에는……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는 편이죠.
당신은 나른한 고양이처럼 눈을 천천히 깜박입니다.
이대로 한 숨 잘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수업 시간에 이렇게 대놓고 말을 건네다니, 제정신일까요?
그러지 않아도 문학 선생님은 무섭기로 유명한 분인데요!
당신은 눈을 반짝 뜨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을 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네요.
오히려 옆 자리 친구만 갑자기 주위를 살피는 당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뭔가 변명을 하기에도 늦었고……
뭐, 별로 상관없겠죠.
주위 평판에는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당신.
긴 숨을 내쉬며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4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역시, 곁에 있는 친구가 말하는 게 아니에요.
머릿속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거라구요.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당신은 슬쩍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아무래도 지금 내 목소리는 너에게만 들리는 것 같아.
머릿속 목소리는 그렇게 사과를 해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환청이라도 듣는 걸까요?
이런 괴현상,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대답하려 입을 열면 역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죠?
아아,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는데요.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10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입을 달싹거리면서 조그맣게 말한다… 마치 복화술이라도 하듯이)


옆자리 친구: (졸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잠이 깬 모양인지,) 저기, 타치바나. 혹시 뭔가 말했어?

옆자리 친구: 어, 어엉. 잘못 들었나……
옆자리 친구는 하품을 쩍 하더니 다시 교과서를 보는 척 눈을 감습니다.
아무래도 잠이 덜 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요.
뭐든 다행인 일입니다.


선생님: (시계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린다.) 수업 끝나기 10분밖에 안 남았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10분 정도는 참아.











당신의 말대로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트레인 선생님이 아쉽다는 듯 교실을 떠나시네요.
에펠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합니다.


복도는 시끌시끌합니다.
아무래도 에펠과 '제대로' 이야기하기는 글른 모양이네요.
영화 연구부로 향하려는 당신의 발을, 에펠의 목소리가 잡아챕니다.













에펠의 목소리는 조금의 절망을 띄고 있습니다.
아쉬운대로 거기라도 둘러볼까요?

아무리 둘러봐도 평범한 소파입니다.
바꾼지 얼마 안 된 것처럼 푹신하네요.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청소년 문예지 한 권과 모비 딕, 노인과 바다 등의 소설들이 놓여 있습니다.
금요일에 에펠이 두고 간 것들인 모양이에요.
책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문예지에는 얇은 종이로 된 책갈피가 끼워져 있습니다.
아마 에펠의 것인 모양이죠?
레오나가 롤모델이라고 한 것치고는, 제법 사랑스러운 모양의 책갈피를 쓰네요.
청소년 문예지 '여름의 문장들'━━━━━━━━━━━━━━━━━─…어째서 모든 해양 소설들은 고래에 대한 경애-경외심을 가지는가? 이는 바다라는 무한하고도 유한한 공간에 대한 공포의 매개체로, 바다의 크기에 비할 만큼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는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바다라는 특수한 공간에 알맞게 발달된 몸체와 생존 방식,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특이한 전달 방식이 해양 소설을 향유하는 작가와 독자를 심해-심연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보다 일상적이고 환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고래는 바다가 가진 가장 거대한 보물이자, 수많은 혼령의 무덤이다. 해양 소설이 갖는 모험심리를 자극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존재이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러한 상관관계를 두고 청춘을 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지의 공간과, 그 안을 배회하는 커다랗고 환상적인 존재들. 고래 당사자면서, 동시에 고래를 꿈꾸는 이들. 에펠 펠미에 학생의 「고래의 파편」이란 작품은 우리가 바라온 고래라는 존재를 그리 멀지 않은 것으로 그려내는 중요한 작품이지 않을까…
책갈피가 끼워진 부분에는 이런 논평이 적혀있습니다.
이건 소설의 소개문인 모양이니, 뒷장에는 분명 에펠이 썼다던 소설이 있겠지요.
당신은 여상하게 페이지를 넘기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페이지가 완전히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4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힘주어 페이지를 잡아당기자, 다음 소개문이 펼쳐집니다.
보고 싶은 페이지는, 아니, 에펠의 소설 전체가 굳게 붙어 있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첫 장을 넘기려 한 순간.
철컥, 하고 무언가 잠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물소리가 들릴 리 없는 공간에서,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져내리고 있습니다.



어쩌죠?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까 전의 철컥 소리, 문이 잠기는 소리였나 봐요.

아무래도 인도어파 여고생의 힘으로는 문고리를 부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천장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허리까지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아, 열쇠!
분명, 당신에게 에펠의 열쇠가 있지 않았던가요?
안에서도 열 수 있으려나요?
확실하진 않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문고리에 열쇠를 꽂으려던 순간,
누군가가 당신의 손을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쇠는 물 아래로 떨어졌고,
벌써 가슴까지 차오른 물이 순식간에 목 끝까지 올라옵니다.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79 |
| 판정결과: | 실패 |
숨을 참는게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습니다.
한번 더 잠수합니다.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62 |
| 판정결과: | 실패 |
멀리서 에펠이 '할 수 있어!'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확실한 사투리 억양이네요.
한 번 더 잠수해봅시다.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89 |
| 판정결과: | 실패 |
숨이 막혀오지만 잠수에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열쇠를 찾아야겠죠.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4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85/42/17 |
| 굴림: | 11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당신은 잠수하자마자 열쇠를 발견합니다.
손에 열쇠를 쥐자, 에펠도 안심했는지 한숨을 내쉽니다.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97 |
| 판정결과: | 실패 |
열쇠도 찾았는데, 포기하려고요?
말도 안 되죠!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겨우 문 앞에 도착한 당신은 열쇠로 문을 엽니다.
문을 열고, 공기를 마주하자 어지러워집니다.
시야가 흐려지고, 세상이 검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펼쳐진 것은 익숙한 학교의 풍경이 아닌……
뜨거운 햇살.
당신의 눈 앞에는 어느새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고개를 들면 어느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태양이 떠 있습니다.
사방에 흐드러지는 빛무리에서 눈을 떼면, 섬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어디인지도 모를 섬.
당신은 꼭 파도에 떠밀려온 것처럼 해변가에 누워있습니다.
한 번의 시선으로 섬의 끝이 보일 정도로 작은 섬.
섬에는 야자수도, 울창한 활엽수도 아닌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그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이는 것은……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흐릿하게 일렁이는, 푸른색의 그림자입니다.
저것이 과연 사람이 맞기나 할까요?
그 미지의 존재를 보고 있자니, 그 존재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옵니다.
단순히 목소리를 듣기만 했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반사적으로 눈을 깜박인 사이, 존재는 사라졌습니다.
시선을 끌던 존재가 사라져서일까요.
당신은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을 이제야 발견합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미동도 않는 몸.
소금기에 절은 푸석한 연보랏빛 머리칼.
처음 보는 인물임에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에펠이구나.
학교를 안 나온지 사흘이랬지요, 분명.
이렇게 사흘 동안 쓰러져 있었던 걸까요?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사흘 동안 이런 상태로 있었던 걸까요?

당신이 흔드는 대로 에펠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깨어나지는 못하는군요.
영원한 잠의 저주에 걸린 동화 속 주인공처럼, 그저 쓰러져 있을 뿐입니다.

대답은 없습니다.
그는 그대로 잠든 채입니다.
꼭 죽은 사람처럼.

코 밑에 손을 대어봐도, 숨결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는, 정말로 죽어버린 걸까요?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진정하세요, 타치바나.
아직 죽지는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에펠을 깨울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요?
애초에 이곳, 현실같지 않은 공간이잖아요.
이런 꿈 같은 곳에서는 기적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에펠을 깨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때요?

당신의 곁에 소리 없는 그림자가 다가옵니다.
그림자가 지는 쪽을 바라보면,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서 있습니다.
푸른색으로 보일 정도로 창백한 피부.
긴 연푸른빛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별을 수놓은 듯한 로브에서 떨어져나온 빛무리가 흐트러집니다.
아이의 몸에서 떨어지는 빛의 조각들을 바다가 게걸스레 삼킵니다.
이 아이는, 이 존재는 무엇일까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이토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는 여지껏 본 적이 없습니다.
소멸하고 있기에 이리도 아름다운 것이겠죠.
존재가 입을 엽니다.

존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는 곧 입을 열지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순 없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노랫소리처럼 들릴 뿐이에요.
아이는 당신을 바라보다, 당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당신의 손을 잡아 쥡니다.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해, 이마를 맞대자.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1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4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고래의 아이: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환영이며, 인간의 손으로 사라지는 그림자다. … …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쓰러져 있는 저 아이가 내 세계에 들어와 … 되었지. … … 아마도 네 세계에 내 힘이 … … 같으니, 그것을 찾아 해결해주었으면 해.
내 힘이 담긴 것은 아주 작은 물체이고, 아마도 물속에 있을 터. 그를 사용하는 방법 또한 어딘가에 감춰져 있겠지. 대부분 고래의 힘이란 것은 물에서 시작되고, 물에서 끝나는 것이니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곳 또한 물속이리라. … 내 힘을 되찾기 위해 도와주었으면 한다. … 다만 이곳의 공간은 저 아이의 삶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에 임시로 네가 직접 데리고 가야 … 혼백을 되찾는 것은 조금 걸리겠지만 저 육체는 네가 직접 …… .

말을 마친 고래의 아이가 눈을 뜹니다.
그리고, 천천히 쓰러진 에펠을 들어 당신의 품에 안겨줍니다.
풍선인형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몸.
품 속에 안겨있지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고래의 아이는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그리고 에펠을 안은 당신을 살짝 떠밉니다.
바다로, 바다로 가야 한다는 것처럼.
밀물이 밀려옵니다.
바다가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밀려오는 파도가 당신을 삼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당신은 다시 복도에 서 있습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모양인지, 창 밖으로 노을지는 하늘이 보입니다.
보충 수업까지 모두 끝난 모양으로, 학교는 텅 비어 있습니다.
드문드문 운동장 쪽에서 소음이 들려오긴 하지만, 그도 이제 곧 파하는 모양이네요.
당신이 멍하게 복도 너머를 바라보며 서 있자, 에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립니다.





에펠은 말끝을 흐립니다.
당신을 위험에 빠지게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아까 전 그 아이가 말했었죠.
힘을 찾아준다면, 에펠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던가요?
힘이 담긴 물체와 그를 사용하는 방법이 적힌 쪽지.
물이 있는 곳에 있다고 했으니, 학교에 물이 고여있을 법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볼까요?







신관 2층의 수조는, 학생들이 다 같이 관리하고 있는 수조입니다.
아무도 없는 신관 안의 수조는, 언제나와 같습니다.
멀리서 대충 보기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데, 무언가 있는 걸까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특별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형형색색의 미니 열대어 사이로, 검푸른 물고기 하나가 있는 것 빼고는요.
다른 것들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것이, 힘이 넘쳐 보이네요!
혼자서 시커먼 게 신경쓰이긴 하지만, 별 특별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힘이 넘치던 물고기가 갑자기 축 늘어집니다.
어딘가 아픈 것 같은데, 뜰채로 떠서 자세히 봐도 좋지 않을까요?
저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차피 학생들 중 하나가 처리해야 하잖아요.
이번 달 수조 당번… 분명 1학년 A반이었죠?
어차피 당신이 해야 할 것 같으니, 한번 꺼내서 상태를 보는 건 어때요?

물 밖으로 물고기를 꺼내자,
물고기의 몸이 터지기라도 할 것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검푸른색으로 뒤덮인 등과 하얀 배.
반짝이던 비늘이 어느새 나뭇결로 변합니다.
어느새 뜰채 안의 물고기는, 나무 모형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