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어쩌면 들어가기 전 고백해야 할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유튜브에 공개되는 애니메이션을 챙겨 보거나, 마스코트 인형 굿즈를 사는 등 치이카와(로컬라이징명 먼작귀)의 열성적인 팬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일본 서브컬쳐 캐주얼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당연하게 트위터를 하고, 최근 ‘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 만큼 제 탐라에도 치이카와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 친구들이 알티하고 마음 찍은 트윗들을 최신순 탐라, 혹은 추천 탐라에서 마주하며 저는 소위 말하는 정보의 간접흡연(…)을 겪었습니다. 결정적인 스포일러라고 해도 좋을 정보들을 모두 알고 들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그럼에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뱀발 : 저는 스포일러를 미리 알고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긴 하지만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 들어가기 전, 나가노 작가에 대한 생각과 스포일러 주의 문구를 적고 본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나가노라는 사람은 상업적인 면에서 특히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은 여자친구의 영향으로 치이카와 애니메이션을 챙겨보게 되었고, 저는 지금 농담곰 수면 파자마를 입고 있는데다 치이카와 홀로그램 파우치를 당장 어제까지 지갑으로 사용했거든요. (홀로그램과 pvc가 분리된 파우치가 사직을 윤허하여 달라고 하기에 사직을 윤허해주었습니다…….) 농담곰과 치이카와를 둘 다 이렇게까지 히트시키다니, 한 사람의 일로는 어쩌면 업적이라고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요.
귀여움 속에 숨어있는 잔인성을 그리는 것에 관해 사람들은 나가노를 사이코패스다, 폭력적이다, 참피 좋아할 것 같다 등등의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저는 굳이 따지자면 그 부분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편이네요. 그야, 취향이야 다양한 거고 그 세상을 중립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 작가의 성향도, 글쎄요. 큰 문제가 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도 만화를 챙겨보는 오타쿠들이나 자와자와하는 거지, 그냥 “치이카와 귀여워~” 하는 머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다 해서 제가 머글은 아니지만, 나가노에 관한 저의 평가를 요약해 보자면 “상업적으로 대단한 작가” 정도로 끝낼 수 있다는 것으루말하고 싶었습니다.
뭐, 그 세계의 잔인성과 그려내는 방식의 냉정함을 따져봐도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네요.
각설하고, 들어가겠습니다.
SPOILER ALERT!
아래부터는 ‘극장판 치이카와 : 인어섬의 비밀’에 관한 스포일러가 게시됩니다.
희생의 논리
본문 소제목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맞아? 하고 갈등했지만, 역시 이것보다 더 좋은 문장은 없겠더라고요.
사실 이외로도 할 말이야 많습니다. 매끈하게 잘 깎여나온 그림이 좋았고, 장면 연출적인 부분이나 음향적인 어쩌구… 그리고 잘 구조화된 스토리 같은 부분들이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저보다는 다른 분들이 더 분석을 잘해두셨을 것 같으니 저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전에, 지금으로부터 한 10년쯤 전, 친구들과 ‘메이즈 러너’ 시리즈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다 보고 나서 한 친구가 말하기를, “생존자들이 이기적이다.”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백신을 만드는 데에 협력하는 게 뭐가 그렇게 나빠? 그냥 몇 명만 희생하면 되는 거 아니야?”
희생……
그렇지만 과연 비자발적 자기희생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작중 한잎이와 두잎이는 세이렌이 어째서 자신의 이웃 먼작귀들을 잡아가는지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다만 떨고 놀라기만 할 뿐, 내가 인어를 잡아먹었어. 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당시 그 친구의 논리대로라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중 등장하는 섬의 먼작귀족들은 정말 한잎이와 두잎이를 단죄할 근거를 가진 걸까요? 저는 그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경척)
자신의 죄로 인해 전체가 연대책임을 지게 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희생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은 역시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진 않습니다. 전체가 책임을 지는 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더더욱이요. 그러나 이것에 관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을 것이 분명한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인어의 고기를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너는 죽지 않으니 고통을 겪어도 된다, 고 말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지 않나. 싶은 거죠.
한잎이와 두잎이가 이기적이지 않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둘은 충분히 이기적이에요. 인어의 고기를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설명되는 이야기입니다. 영원히 살게 된 녀석은 자신이 홀로 남는 것이 두려워 남은 하나에게 인어 고기를 먹도록 종용하죠. 이것도 책임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나는 너 때문에 원치 않는 영생을 살게 되었고, 그러니 외로워질 테다. 그러니 너는 죽지 말고 나와 함께 영생을 살아 내 외로움을 책임져라.”
일견 로맨틱해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무서운 말입니다. 죽어가던 친구를 살려줬더니 이런 말이나 하고요. 그러니 이해 못할 욕망은 아닙니다. 대중매체에서도 이런 대사가, 이런 욕망이 ‘로맨틱한’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사랑’이라는 테마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요. (이런 감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제가 에이스펙트럼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며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치이카와와 그 친구들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어린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보고 배워야 할 영화에 가깝다고고 생각했네요. 왜, 어린 왕자도, 짱구 극장판 시리즈도 그렇잖아요. 어린이들은 당연히 가지고 있는 윤리의 감각을 어른들은 상실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 외로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아서 즐거웠다는 생각뿐입니다. 어머니와 제 픽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도록 할게요.
어머니의 픽 : 모몽가. (솔직한 게 보기 좋다.)
린더의 픽 : 하치와레. (귀엽다!)